휘발유보다 비싼 경유 등장에 화물업계 비상…기업들도 "이러다 다 죽는다"

입력
2022.03.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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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급 정상화된 요소수 가격도 안 내려 
유가 반영 안 되는 운송비 제도도 문제



27일 서울 영등포구 내 한 알뜰주유소에서 만난 화물차주 이모(55)씨 미간 주름은 주유가 끝날 때까지 펴지지 않았다. 셀프주유기로 직접 기름을 넣던 그는 “한 번에 100리터(L)를 주유할 경우 연초에 비해 5만 원을 더 내는 셈”이라고 했다. 그들이 받는 운송비용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인데, 연초만 해도 L당 1,500원을 밑돌았던 경윳값이 최근 2,000원을 넘나들고 있어서다. 이씨는 “휘발유에 비해 경윳값 상승 폭이 커진 데다, 지난해 대란을 겪은 요소수도 수급이 안정됐음에도 두 배가량 뛴 가격에서 고착화됐다”고 하소연했다.

경윳값이 기가 막혀… 요소수 가격도 '지난해의 2배' 고착화

화물 운송업자들의 비명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고유가 시대에 가파르게 형성된 경유 가격 상승세가 직격탄으로 돌아오고 있어서다. 특히 일부 주유소에서 감지된 휘발윳값을 넘어선 경윳값의 수직상승세에 화물업계에 전해진 부담은 상당하다. 이 런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물류업계 전체에 퍼져 나간 충격파는 물류비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국내 산업 전반에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린다.

이날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올해 첫 거래일인 1월 1일 L당 각각 1,623원과 1,442원에 팔리던 휘발유와 경유 전국 평균 가격이 전날 각각 2001원과 1,919원까지 뛰었다. 휘발유가 L당 378원 오를 때 경유는 477원 오른 셈이다. 유럽 내 경유 수급 차질 여파로 국제 시장에서 휘발유보다 경유가 더 비싸게 팔린 현상이 지속됐는데, 이 추이가 국내 시장에도 반영되면서 일부 주유소에선 경윳값이 휘발윳값을 추월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현상은 글로벌 오일쇼크가 정점에 달했던 지난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화물업계 곡소리… “정부도 대기업도 너무해”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화물업계 고통도 현실화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유 가격 인상으로 화물차량 수익성이 줄어드는 측면은 있다”면서도 “특히 (대기업 소속인)택배 운전자보다 대형화물 운전자들의 타격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한국교통연구원이 내놓은 화물운송시장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 화물 운전자의 평균 지출 중 유류비 비중은 42.7%에 이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3월 평균과 비교했을 때 5톤 이하 화물차는 64만 원, 12톤 이상은 175만 원, 25톤은 250만 원 가까이 증가했다.

화물업계 노조 측은 “대기업 화주들은 응당 지불했어야 하는 운송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 왔다”며 “이제라도 원가 비용이 제대로 반영된 운송료를 지급해야 한다”며 “정부의 유류세 인하 정책의 경우 유류세와 함께 유가보조금까지 삭감되면서 화물노동자에게 있어 그 효과는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물류기업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현재는 유가 부담으로 인해 물류업계의 수익이 감소하는 구간”이라며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화주와의 협상을 통해 물류가격 재조정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했다.


기업들도 국제유가에 촉각...200달러 넘어가면 공장 가동도 중단해야

위기감은 국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3월 중순 잠시 꺾인 국제유가가 최근 다시 오르면서 배럴당 120달러대를 위협하면서, "이 추세가 지속될 경우 다 죽을수도 있다"는 분위기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기준 1,000대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국제유가 급등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물은 결과, 응답 기업 151개사 가운데 70.1%는 유가가 150달러 이상일 경우 적자로 전환될 거라고 응답했다. 응답 기업의 적자 전환 예상 평균 유가는 배럴당 142달러로 조사된 가운데, 모든 기업은 유가가 200달러를 넘길 경우 공장 가동 중단까지 고려할 수 있다고 답했다.

유가 상승으로 수익성(영업이익)도 악화된다고 답한 기업은 76.2%에 달했고, 영업이익은 평균 5.2%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의 76.2%는 유가 상승 여파로 기존 투자 계획을 축소한다고 답했고, 평균 축소 규모는 2.7% 수준이었다. 유가 상승 기간의 예측에 대해선 응답 기업의 84.6%가 6개월 이내로 전망했다. 기업들은 정부 지원 정책으로는 '원유 관세 인하'(37.1%), '해외자원개발 지원 등 안정적 에너지 수급처 확보'(25.6%) 등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유가 상승이 장기화하거나 유가가 150달러 이상으로 급등할 경우 큰 피해가 우려된다”며 “기업 부담이 완화될 수 있도록 정부가 원유 등의 관세를 인하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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