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간 거리는 25일에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정권 말 공공기관 인사권·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등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평행선이고, 회동을 조율할 물밑 채널의 가동도 중단됐다.
윤 당선인의 모습은 '마이웨이'다. 문 대통령과의 회동 성사에 힘을 쏟는 대신 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각종 정책을 비판하면서 새 정부 청사진 그리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원만한 정권 이양은 갈수록 멀어지는 분위기다. 윤 당선인이 그럼에도 문 대통령과의 정면충돌을 피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윤 당선인 측 '협상 창구'인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아직 청와대 측으로부터 전화나 문자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먼저 연락을 한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장 실장은 "먼저 하는 게 맞겠느냐"고 반문했다. '집무실 이전 문제 등을 풀려면 먼저 연락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는 "고려해 보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사실상 '보여주기식 회동'은 의미가 없다는 게 윤 당선인 측의 판단이다. 윤 당선인 측 핵심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만나서 사진 한 장 찍는다고 해서 관계가 풀리지 않는다"며 "차기 정부가 업무를 잘할 수 있도록 인수인계를 도와주는 게 현 정부가 할 일인데 여전히 새 정부의 발목만 잡으려 들지 않느냐"고 말했다.
신구 권력 간 불협화음이 길어지면서 문재인 정부가 정권 이양에 비협조적이라는 프레임을 굳히는 것도 윤 당선인에게 나쁘지 않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윤 당선인 측은 "당선인이 정치에 입문한 게 문재인 정부의 탄압 때문이 아니었느냐"며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여권의 방해가 끊이지 않는 것을 국민들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오는 6월 지방선거까지 현 정부와 대립구도가 선명해질수록 새 정부에 우호적인 여론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새 정부에서의 '적폐 수사'를 둘러싼 주도권 싸움 성격도 짙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조작 의혹 등을 법과 원칙에 따라 규명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특히 양측 갈등의 핵심인 '감사원 감사위원 두 자리'를 둘러싼 공방도 새 정부 출범 후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감사의 키를 쥐고 있다는 점에서 맥락이 같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갈등이 악화일로에도 윤 당선인 주변은 오히려 느긋하다. 어차피 '시간은 미래 권력의 편'이라는 입장에서다. 윤 당선인과 가까운 한 국민의힘 의원은 "당선인이 당장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현 정부와의 동거 기간은 정해져 있다"며 "새 정부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핵심 관계자도 "인사나 용산 이전 문제는 모두 윤 당선인이 취임한 후 직접 풀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오는 27일까지 회동하지 않는다면 역사상 가장 늦게 만나는 '신구 권력'이라는 오명을 얻는다. 1992년 대선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당선인이 대선 후 18일 만에 만났다.
전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안보 위기가 고조된 만큼 이에 대한 협력을 계기로 꼬인 실타래를 풀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실제 문 대통령의 전날 지시에 따라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오후 윤 당선인을 찾아가 북한의 ICBM 발사 관련 동향과 정부 대응, 향후 전망 등에 대해 1시간여 브리핑을 했다. 청와대에서도 서 실장의 브리핑을 계기로 경색된 관계가 풀리길 기대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다만 윤 당선인 측은 "안보 협력과 회동은 별개"라고 선을 긋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