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전하려던 축하 '난(蘭)'이 곤욕을 치렀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거센 항의 때문이다. 직접 난을 들고 대구 달성 사저를 찾았다가 발걸음을 돌린 이 대표 비서실장 박성민 의원은 이후 다시 돌아와 옆문으로 간신히 전달하는 촌극을 빚었다.
박 의원은 25일 오후 1시 20분쯤 보좌진과 함께 검은색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을 타고 박 전 대통령 사저 앞에 도착했다. 양손에는 ‘쾌차를 기원드립니다.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이라고 적힌 난을 들고 있었다.
박 의원은 곧바로 사저 인근에 있던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였다. 이들은 박 의원을 향해 “키워준 사람에게 은혜를 이따위로 갚느냐”, “대통령님이 5년간 옥고를 치렀는데 뻔뻔하기 그지없다”, “병주고 약주고 장난치는 것이냐”며 험한 말을 쏟아냈다. 한 50대 여성 지지자는 박 의원의 차량에 올라 심한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당황한 박 의원은 어딘가로 전화를 건 뒤 “알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발걸음을 돌렸다. 박 의원은 취재진에게 “사저 내부와 조율이 됐다”면서 “다른 날 다른 방법으로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후 입을 굳게 다문 채 차를 타고 사저를 떠났다. 이 과정에 박 의원에게 난을 건네받은 보좌진 한 명이 갑자기 사저 앞 공터를 가로질러 차량을 향해 달리면서 취재진과 80m가량의 추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박 의원이 사저 인근에 머문 시간은 15분에 불과했다.
사라졌던 박 의원은 한바탕 소동을 빚은 사저 주변이 잠잠해지자 10분 뒤 슬그머니 다시 돌아왔다. 이어 사저 옆문을 통해 난을 전달했다고 현장 관계자가 뒤늦게 전했다. 두 시간 뒤 박 전 대통령은 경호부장을 통해 "잘 받았다"는 문자 메시지를 이 대표에게 전했다.
이 대표는 2011년 박 전 대통령이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정계에 입문해 ‘박근혜 키즈’로 불렸다. 하지만 탄핵을 계기로 바른정당에 합류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 갈라섰다.
이 대표는 지난해 박 전 대통령 사면을 두고 “당대표로서 공적인 영역에서는 사면론을 꺼낼 생각이 없다”며 사실상 반대 의지를 내비쳤다. 같은 해 6월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중에는 “정치권에 영입해 준 박근혜 대통령에게 감사한 마음이지만, 탄핵은 정당했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