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이라 불리며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그래픽카드 가격이 올해 들어 급락하고 있다. 암호화폐 가격 하락과 더불어 주요 그래픽카드 칩셋 제조사들도 반도체 수급난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면서 가격 또한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27일 테크스팟 등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등에 따르면, 이달 온라인거래 플랫폼 이베이에서 유통 중인 엔비디아, AMD 등의 주요 그래픽카드 평균 가격이 연초 대비 20~30% 하락했다.
대표적인 고성능 그래픽카드인 엔비디아 RTX 3090은 지난 1월 2,638달러(약 320만 원)에서 이번달 2,281달러(280만 원)로 14.5% 떨어졌다. 시장 발매가인 1,499달러(180만 원)에 비해선 여전히 100만 원 가까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지만, 지난해 그래픽카드 수급난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5,000달러(600만 원)까지 치솟았던 것을 고려하면 안정세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가장 하락폭이 큰 RTX 3070 Ti의 경우 같은 기간 1,226달러(149만 원)에서 929달러(약 112만 원)로 24.2% 감소했다. RTX 3080 Ti도 가격이 16.6% 떨어지는 등 고성능 그래픽카드 가격이 동반 하락하는 추세다.
국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가격비교사이트 다나와에 따르면, 엔비디아 RTX 3090의 평균 가격은 지난달 마지막 주 307만6,400원으로, 같은 달 첫째 주(367만6,107원)보다 60만 원(17.3%) 가까이 감소했다. RTX 3080 Ti(241만9,943원→201만5,963원), RTX 3080(196만7,528원→138만8,582원) 등 상위급 모델들의 가격이 20~30% 가까이 급락했다.
그래픽카드 가격이 떨어지면서 그동안 컴퓨터(PC) 구매나 업그레이드를 미뤄 왔던 게이머들도 한층 걱정을 더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두 달 새 고성능 그래픽카드 가격이 많이 떨어지면서 구매 관련 문의가 늘고 있다"면서도 "RTX 3060 등 수요가 많은 중급 그래픽카드들은 하락 폭이 크지는 않다"고 전했다.
업계에선 그래픽카드 가격이 안정세에 접어든 것을 두고 암호화폐 시세의 전반적인 하락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비트코인의 경우 지난해 7만 달러를 돌파하는 등 오름새가 이어졌지만, 미국이 금리 인상과 긴축 정책을 예고하면서 올 들어 4만 달러 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암호화폐 가격이 하락하면서 코인 채굴하는 용도로 활용되는 그래픽카드 수요도 감소했다는 진단이다.
여기에 변화된 알트코인의 '대장주'인 이더리움 채굴방식도 그래픽카드 가격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더리움의 공동 창업자 조셉 루빈은 연내 '이더리움 2.0' 업데이트를 예고한 바 있다. 이더리움은 현재까지 코인 채굴 시 그래픽카드 연산 성능을 활용하는 '작업증명(PoW)' 알고리즘을 사용해 왔다. 그래픽카드의 성능이 높을수록 이더리움을 빠르게 채굴할 수 있기 때문에 고성능 그래픽카드에 대한 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채굴 시 발생하는 막대한 전력 낭비와 탄소배출량 등 비판이 이어지자 소유하고 있는 이더리움에 비례해 보상을 받는 '지분증명(PoS)'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코인 채굴 시 그래픽카드 성능의 중요도가 떨어지면서 관련 수요가 줄어든 것도 가격 하락에 한몫했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엔비디아와 AMD 등 주요 그래픽카드 칩셋 제조사가 공급난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신호다. 앞서 콜렛 크레스 엔비디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올해 하반기에는 그래픽카드 공급 부족 현상이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미 IT전문매체 WCCF테크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연내 신규제품인 RTX 4000 시리즈 출시를 앞둔 가운데 최근 PC와 노트북 등 제조사에 공급하는 칩셋 가격을 8~12% 인하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