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찌들고 성공에 쫓기는 청년들에게

입력
2022.03.28 00:00
27면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0년에 발표한 '우리 후손들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라는 글에서, 100년 뒤인 2030년에는 인류가 주당 15시간가량만 일하면 생존에 필요한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으므로, 나머지 시간에는 문화와 예술과 철학을 즐기며 살아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2030년이 곧 도래하는데, 이런 세상이 도래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보다 더 주의를 끈 것은 자본주의가 원했던 인간의 삶은 이렇게 적게 일하고 여유롭게 사는 모습이었다는 점이다.

생산성이 발달된 사회에서 굳이 사람들이 밤잠 안 자고 일을 해야만 할까? 조금 일하고 여유를 누리며 정치를 논하고 취미로 시간을 보내면 좀 안 되나? 우리는 이러한 삶을 선망하면서도 정작 노동에서 벗어나면 쓸모없어졌다고 생각하고 많아진 시간을 어쩔 줄 몰라 한다. 경제적 자립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이 비극이지만,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이 주어진 상태라면 인간은 지금보다 훨씬 더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가 굳건히 믿어온 노동지상주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밤잠 안 자고 노동하는 것을 부지런하다고 칭송하는 것이 맞는가?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 무노동 무임금의 시각에서 지금의 노동 현실을 보게 되면 청년들은 더 열심히 일해야 하고, 그런 일자리를 찾아주지 못한 것은 정부의 잘못이며, 그나마 열려 있는 작은 공간에 들어가기 위해 청년들은 끊임없이 스펙 경쟁을 해야 한다. 노동지상주의를 벗어나게 되면, 노동으로 이뤄낼 성공의 의미, 성공에 다다르기 위한 경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며 대다수가 루저가 되어 좌절하는 삶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가치에 대해 성찰하고, 물질지상주의에서 벗어나고, 일률적인 성공지상주의에서 벗어난다면 청년들은 더 많은 가능성들을 만날 수 있다. 인류의 평등과 평화를 논하며, 윤리적 소비를 하고, 정치적으로 깨어 있으며,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자존감을 가지고 충만한 삶을 사는 온전한 성인으로서의 모습으로 대안적 삶을 열어갈 수 있다. 이를 위해, 청년들이 나서야 한다. 청년들 스스로 현재의 사회체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변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양한 삶의 방법에 대한 모색과 실험, 그리고 활발한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 시대에 창업이 갖는 가능성에 대해 좀 더 시각을 확장해 보도록 하자. 창업이 청년 일자리를 대체하느냐 아니냐를 논하기보다, 청년들의 대안적 존재양식으로서 창업이 갖는 의미에 주목해보자. 청년 창업은 기존 대기업이 내주는 일자리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닌, 청년 세대의 반란, 새로운 존재양식이 될 수 있다. 대기업을 지향하던 커리어 목표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노동의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방향으로 바꾸어 낼 수 있다.

청년실업의 시대를 벗어나기 위해 기업에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라고 하는 것 이상으로, 청년들 스스로 일과 삶의 대안을 찾아가도록 독려하고 안전하게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창업은 오랜 청년실업의 시대를 끊어낼 뿐 아니라, 청년들로 하여금 새로운 일과 삶의 존재양식을 열어가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강민정 한림대 글로벌협력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