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4년 만에 다시 ‘겨울’이 왔다. 북한이 24일 탄도미사일의 끝판왕인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면서 남북미 관계는 엄혹했던 2017년으로 되돌아갔다. 올해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17년엔 3차례 ICBM 발사로 위기감을 점차 높였다면, 2022년엔 석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ICBM에 준하는(실패 포함) 미사일 도발을 4번이나 감행했다. 겉으론 국방력 강화 계획 이행 의지를 내보인 것이나, 대북 강경책을 예고한 윤석열 정부와 북한 이슈를 방치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에 확실한 경고를 보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북한이 이날 쏘아 올린 ICBM의 제원(고도 6,200㎞ 이상, 사거리 약 1,080㎞)은 미국이 정한 금지선(1,000㎞)을 확실히 넘어섰다. 앞서 북한이 두 차례 정찰위성으로 위장한 탄도미사일이 “ICBM 성능시험”이라는 한미의 사전경고를 전혀 귀담아듣지 않은 것이다. ICBM 도발은 시간 문제였다. 이미 지난해 1월부터 고체엔진 ICBM 개발 등 ‘국방력 발전 5대 과업’ 이행에 공들였고, 올 초 김정은 국무위원장 스스로 ‘모라토리엄(발사유예)’ 파기를 시사하기도 했다.
2017년에도 그랬다. 김 위원장 집권 후 핵무력 개발에 국가역량을 집중하던 북한은 그해 7월 4일과 28일, 11월 29일 세 차례 ICBM을 쏘아 올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추가 제재를 거듭했으나, 북한은 굴하지 않았고 2017년 11월 결국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한반도 정세는 이듬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찾아온 ‘한반도의 봄’ 직전까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올해는 훨씬 거침이 없다. 북한은 올 들어 11번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는데, 지난달 27일부터 네 차례 ICBM급 도발이 전부 한 달 사이 이뤄졌다. 시기는 짧아졌고 빈도도 잦아진 것이다.
북한의 대담한 도발 배경엔 ‘북한 리스크’ 관리가 어려워진 한미의 변화된 환경이 있다. 미국은 미중갈등과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에도 힘이 부쳐 동북아, 특히 북한 문제는 후순위로 돌려놓았다. 남측도 매번 정권 교체기에는 정부의 틀 자체를 바꾸느라 남북관계에 힘을 쏟을 수 없다. 북한은 이처럼 한미 모두 새로운 대북정책 방향을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을 노려 지금이 향상된 전략 무기체계 능력을 점검할 호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16일 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실패에도 불구, 과학자들을 격려하며 성공을 당부했다는 보도(데일리NK)에서도 고강도 도발을 밀어붙이겠다는 의도가 느껴진다.
윤석열 정부와 5년 내내 ‘강 대 강’ 대치를 불사하겠다는 속내 역시 엿보인다. 윤 당선인은 북한이 거부하는 조건 없는 비핵화와 인권 개선을 전면에 내세웠다. 취임 전부터 대결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면서 대북정책 전환 없이는 남북관계도 계속 험로를 걸을 것이라는 신호를 발신한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윤 당선인이 청와대 집무실 이전으로 ‘안보 공백’을 초래했다는 국내 일각의 비판을 의식해 남측의 대비태세를 점검하려 했을 수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연초부터 도발을 촘촘히 이어간 것도 남측을 꾸준히 떠보며 정권 전환기를 충분히 활용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대내적으로는 20일 앞으로 다가온 김일성 생일(4월 15일ㆍ태양절) 110주년에 대비해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성격도 있다. 원래 국내외 전문가들은 태양절을 ICBM 도발 적기로 꼽았다. 하지만 앞서 ICBM 시험발사를 한 차례 실패한 만큼, 축제를 망치지 않기 위해 ‘예행연습’을 성공시킬 필요가 있었다는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