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감사위원에 임명된 분들을 보면, 1명이라는 의미가 간단한 의미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인 장제원 비서실장이 23일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갈등의 핵심이 감사원 감사위원 '인사권'에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감사원ㆍ검찰ㆍ국세청은 3대 권력기관으로, ‘대통령의 칼’이라 불린다. 특히 감사원은 각 정권의 논쟁적 정책 결정 과정에 해부칼을 들이댔다. 감사원의 선택에 따라 전·현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우수수 쓰러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 당선인 모두 감사위원 인사에 대해 물러서지 않을 것이란 뜻이기도 하다.
감사원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감사위원회는 감사원장을 포함해 7명으로 구성된다. 현재 2명이 공석이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문 대통령이 임명했다. 4명의 감사위원 중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 김인회 감사위원과 이낙연 국무총리실 국정운영실장 출신 임찬우 감사위원은 문재인 정부와 가까운 인사다.
문 대통령이 임기 중에 1명을 더 임명하면 현 정부 성향 감사위원이 과반(7명 중 4명)을 차지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감사를 막으려는 알박기 인사"라는 게 윤 당선인 측의 비판이다. 정권 교체 이후 감사원이 윤석열 정부를 강력 견제할 가능성도 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4를 만드느냐, 4를 저지하느냐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나머지 감사위원 2명은 중립 성향으로 분류된다. 유희상 위원은 감사원 출신이고, 조은석 위원은 검찰 출신이다.
청와대의 얘기는 다르다. 현직 대통령에게 있는 감사위원 임명권에 간섭하려는 자체를 ‘월권’으로 본다. 더구나 감사위원은 ‘4년 임기제 지명직’이다. 임기를 보장해 지난 정부에서 임명한 감사위원이 다음 정부를 견제하도록 고안한 시스템이다. “윤 당선인이 감사위원 인사에 개입하려는 의도는 감사원을 이용한 보복 감사를 하려는 것”이라는 게 청와대 기류다.
윤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의 적폐를 수사하겠다'고 한 것도 청와대의 경계심을 한껏 키웠다.
양측에 각인된 ‘감사원 트라우마’도 감사위원 인사에 예민한 배경이다. 감사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난 정부에 대한 정책 감사를 벌였다. △노무현 정부의 봉하마을 지방교부세ㆍ남북협력기금 감사(이명박 정부) △이명박 정부의 자원 외교 감사(박근혜 정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감사(문재인 정부) 등 예외는 없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측은 퇴로 없이 맞서고 있다. 청와대는 "감사위원을 1명씩 서로 추천한 후 협의해 결정하자"는 입장이다.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가 추천해도 우리가 반대하면 인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감사위원 인사를 둘러싼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도 무기한 연기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24일 한국일보에 “감사원 인사를 두고 협의를 할 수는 있지만 최종 결정권을 넘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인 측도 “감사원 인사는 새 정부에서 하는 게 순리”라고 맞섰다. 양측의 대치가 계속되면, 문 대통령이 '원칙대로' 감사위원 2명을 모두 임명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