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퇴짜에도 박범계 입장 고수... 난감한 법무부

입력
2022.03.25 04:00
인수위, 24일 법무부 업무보고 연기
박범계 수사지휘권 폐지 반대가 계기
장관 거스를 수 없어 법무부는 속앓이
김오수, 보고서 내용 늘리고 수정 지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반대 의견에 불쾌감을 표출하며 24일 예정됐던 법무부 업무보고 일정을 연기했지만, 박 장관은 이날도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법무부 간부들은 조직 수장인 박 장관 뜻을 거스를 수 없는 상황에서, 미래 권력에 대항하는 모양새가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윤 당선인 공약에 찬성 입장을 보인 대검은 예정대로 업무보고를 마치고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인수위 "업무보고 하루 전 반대 입장 표명 무례"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는 이날 법무부 업무보고를 취소하면서 박 장관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인수위는 "박 장관이 윤 당선인의 사법개혁 공약인 법무부 장관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 폐지와 검찰 예산편성권 부여, 검찰의 직접 수사 확대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며 "퇴임할 장관이 부처 업무 보고를 하루 앞두고 정면으로 반대하는 처사는 무례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수위 관계자는 "박 장관은 정치인이라 자신의 의견을 드러낼 수 있지만, 기자간담회라는 자리를 만들어 의견을 개진한 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인수위의 강공 모드에 법무부 간부들은 난감해하고 있다. 업무보고가 연기됐다고 '정치인 장관'이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법무부 내부에선 "박 장관이 인수위 반응을 충분히 예상했기에 후퇴는 없을 것 같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박 장관은 이날 오후 퇴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업무보고 보류 이후) 특별히 논의한 게 없다. 보고 문건은 다 정해져 있다. 특별한 변동사항은 없었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법무부에 몸담고 있는 일부 검사들 사이에선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검찰로 돌아가기 위해선 새 정부에 대항하는 모양새가 내키지 않지만, 결국 박 장관 뜻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오수, 별도 보고 결정 뒤 수정 지시

대검은 이날 예정대로 인수위 업무보고를 마쳤다. 인수위는 대검 업무보고에 대해 "대검 현황 및 검찰 주요 추진 정책을 점검한 다음, 윤 당선인 공약과 연계해 새 정부에서 추진해야 할 국정 과제를 검토했다"며 "대검은 법무부 장관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 폐지, 검찰의 독자적인 예산편성권 등 공약에 깊이 공감하고, 인수위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인수위는 특히 "일부 검사들이 보인 정치적 행태에 대해 강하게 질책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대검은 인수위 업무보고 전부터 윤 당선인 공약에 찬성 의견을 드러내며 인수위와 발을 맞추는 모습을 보였다. 윤 당선인 공약은 검찰이 예전부터 요구했던 내용들이라 대검 입장에선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대검 사정을 잘 아는 한 검사는 "김오수 검찰총장이 윤석열 정부와 일해야 하는 후배 검사들 입장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장은 전날 법무부와 대검의 별도 보고가 정해진 뒤, 대검의 인수위 보고서를 직접 챙기며 형식과 내용 측면에서 수정 지시를 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대검이 독립적인 보고 주체가 되면서 보고서 분량도 많아졌다"며 "총장의 수정 지시는 대검 입장을 최대한 잘 전달하기 위해 완성도를 높이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상무 기자
이유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