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인의 내로남불

입력
2022.03.24 18:00
26면
헌법·법치 내세워 文 비판했던 당선인 
한은총재 공방·검찰총장 압박 다른가 
임명권력 당연시 말고 절차 존중하길

문재인 대통령 입에서 “다른 사람 말 듣지 말고 윤석열 당선인이 직접 판단하라”는 말까지 24일 나왔다. '윤핵관'에 휘둘리지 말고 만나자는 말이다. 하기야 어느 대통령과 당선인이 정상회담처럼 조건 따지고 합의하고서 회동했단 말인가. “일단 만나자”는 청와대 측과 “굳이 만날 필요 없다”는 당선인 측 기류 차이를 보면 내막이 복잡한 것은 분명 당선인 측이다. ‘신구 권력 충돌’이란 말은 한 면만 일컫는 것이다. 이면은 신 권력의 자리 나눠먹기다.

한국은행 총재 인사가 그렇다. “둘 중 누가 낫냐고 물어 이창용 후보로 결정했다”는 청와대 관계자와 “좋은 분이라 말한 게 전부”라는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주장이 엇갈리는데 추정되는 바는 있다. 의견을 나눈 건 맞고 이 후보자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진짜 문제를 전해진 장 실장의 말로 짐작한다면, 뒤늦게 챙겨야 할 인물이 떠올랐거나(“사람이 바뀌었다”) 감사원 감사위원 인사를 압박하려는 것이거나(“패키지로 해야지”) 윤 당선인과 소통 문제(“합의한 적 없다”)로 여겨진다.

또 다른 ‘윤핵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매우 노골적이다. 그는 임기가 1년여 남은 김오수 검찰총장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며 사퇴를 압박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을 향해선 “과도한 욕심”이라며 “인수위원장을 하고 또 국무총리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견제했다. 청와대 이전 제동을 "대선 불복"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측근의 위력을 직접 설명한 적이 있다. 선거 기간 강원 동해시 유세에서 이철규 지역구 의원을 “새로운 윤핵관”이라 치켜세우며 “모든 것은 다 인간관계다. 법과 원칙도 있지만 지역 사업과 예산은 결국 대통령과 인간관계가 좋으냐 나쁘냐, 공무원들이 이 의원한테 잘 보이는 게 유리하냐 불리하냐에 따라 좌우된다”고 했다. 모순되게도 “사람 아닌 헌법에 충성해서 윤석열을 선택했다”고 말한 직후 ‘우리가 남이가’가 헌법보다 상위임을 역설했다.

한 자리 하려 선거에 목숨 건 이들이 많지만 이를 당연시하는 건 정말 당연한가. 윤 당선인은 정권의 검찰총장 찍어내기에 법치를 내세워 맞섰던 인물이다. 정계 투신으로 검찰 독립성을 훼손했지만 어쨌든 헌법정신과 법치의 자산으로 당선됐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절차적 민주주의에 충실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선택적으로 수사하지 않는다”는 자기 주장을 김오수 검찰총장에게 적용하는 건 왜 불가능한가. 김 총장이 수사한 대장동 사건을 믿을 수 없다면 윤 당선인이 임명할 수장의 고발사주 수사는 어떻게 장담하나. 문 대통령이 임명한 감사원장이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를 감사하고 검찰 수사로 이어졌는데 그렇다면 어떤 감사위원이든 위법과 비위를 적발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하지 않는가.

법치를 존중한다면 윤 당선인은 헌법이 보장한 문 대통령의 임기와 인사권·군통수권을 내놓으라 할 수 없다. 양해를 구할 문제이고, 그러니 만나야 한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유죄 판결의 교훈은 낙하산 자체를 자제하라는 뜻이지 임기말 알박기만 문제라는 게 아니었다. 전문성이 중요한 산하기관·공사에 ‘임명 권력’을 내려놓는 것 또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선하는 한 방편이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 이전에 꽂혀 있을 때가 아니다. 이 일로 그는 제왕적 대통령제 탈피를 제왕적으로 밀어붙이고 국민과 소통을 결정하며 불통을 드러냈다는 평을 듣게 됐다. 법과 절차보다 살아있는 권력을 우선시한다면 이제는 ‘윤석열 내로남불’이 시작될 수 있다. 취임하기도 전에 하락 중인 지지율을 반등시킬 방법은 있다. “법으로 정해진 임기를 보장하고 성과로 평가하겠다”고 선언하는 것, 자신이 정권교체의 근거로 외쳤던 가치를 실행하는 것이다. 그는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김희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