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도 한 건 하고 왔지요."
#. 3일 오전 10시 이영희(69)씨는 서울 노원구에서 성북구로 가는 배달 건을 받았다. 스마트폰을 켜 '두드림 가격: 8000'이라고 쓰인 배지를 눌러 주문 상세 정보를 확인한다. 배송 물품은 '꽃다발', 픽업 요청 시간은 '11시'. '주문 승인하기' 버튼을 누르고 하던 집안일을 마무리한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면서 '픽업지' 버튼을 누르니 바로 지도 앱으로 출발지와 도착지가 연동되어 경로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이씨는 "오늘도 한 건 하고 왔지요"라며 4년째 하고 있는 실버택배 일을 설명했다. 서울시 노원구에 사는 이씨는 아이들을 다 키우고 대형마트에서 판매직 아르바이트를 9년 했다. 그러다 아픈 남편을 간병하기 위해서 근무 시간이 유연한 일자리가 필요했다. 친구가 노원구청에서 알선해주는 일자리가 있으니 한번 알아보라고 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수락산역에 있는 노원시니어클럽이다. 2019년 BMW택배원이 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처음 택배 일을 시작했을 때는 오전 10시까지 지하철역에 나가야 했다. 당일 아침 배정되는 배달 건을 기다리기 위해서다. 이씨는 "(몇 년 전에는) 노인들 여러 명이 노원역 대합실에 앉아서 '배달 들어왔습니다'라는 시니어클럽의 전화를 기다렸어요"라고 기억했다.
하지만 2019년 애플리케이션(앱)이 생기고 더 이상 한 곳에 모여서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집에 있다가도 다른 일을 하다가도 주문 접수 연락을 받고, 픽업지로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나 거리 등의 요건이 맞지 않아 거절한 주문은 다른 실버 택배원의 스마트폰 앱으로 접수된다.
기존에 물건 픽업지와 배송지 주소를 붙들고 서울을 헤맸던 일도 사라졌다. 이씨는 "이거 없을 땐 길을 많이 헤맸어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안 되겠어서 공인중개사에 들어가서 '실버 택배원인데 길 좀 묻자' 해서 해결했었죠"라고 말했다.
이제는 화면을 한 번 누르면 갈 수 있는 경로가 한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지도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도 할 수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두드림퀵 앱에 '긴급전화' 버튼을 누르면 바로 두드림퀵 매니저에게 전화가 연결된다. 매니저는 택배원과 소비자 사이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해준다.
이 앱의 이름은 '두드림퀵'. 대학생들이 머리를 맞대어 개발했다. 4일 한국일보와 만난 두드림퀵 운영진은 현재 5명으로 2019년 두드림퀵 앱과 홈페이지를 구현한 개발자들의 뒤를 이어 알고리즘 수정을 비롯해 전반적인 사업 운영을 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지하철 요금이 무료인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 사업으로 실버택배가 등장했다. 주로 서류나 꽃다발 같은 가벼운 물건을 지하철을 이용해 노인들이 직접 배달한다. 하지만 배송 과정이나 물품에 대한 정보를 자동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이 없어서 노인들이 택배 의뢰 문자에만 의존해 배달을 다녀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사설 업체가 주도하던 시기에는 중계 수수료를 많게는 70~80%까지 책정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 의식이 두드림퀵 사업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두드림퀵 프로젝트 매니저 정지혜(24)씨는 "어르신들이 매일 지하철역에 모여서 건수를 기다리셔야 하고, 길을 찾기도 어려운데, 수수료까지 많이 떼이는 상황을 문제라고 생각해 시작했어요"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서울대 학생들이 모여 만든 학회 인액터스 소속으로, 정식 법인을 가지고 있는 소셜 벤처다. 두드림퀵 앱을 통해 실버 택배원들은 들어오는 주문과 자동으로 계산된 배송비도 확인할 수 있다. 두드림퀵은 5% 정도의 수수료만 받고 주문 관리, 고객 응대, 앱과 홈페이지 개선 등을 하고 있다.
두드림퀵이 가장 우선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두드림퀵 장수민(23)씨는 '소통'이라고 답했다. 그는 "지역구 시니어클럽과 거기에 소속된 택배원들, 거래처, 손님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니까요"라고 덧붙였다. 실제 두드림퀵은 실버 택배원들이 겪는 어려움을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택배원들 입장에서 가장 관심이 많으면서도 늘 아쉬운 것은 '돈'이다. 택배원 이씨는 실버 택배일이 '돈만 생각했으면 못 할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 만나는 게 좋고, 몸도 움직이고 하면서 건강해지니까 하는 일이에요"라며 "돈 생각하고 왔다가 하루 만에 그만두는 사람도 많아요"라고 했다. 유연한 일자리인 만큼 택배 건 수가 들쭉날쭉해 수입이 너무 적을 때도 있었다. 이런 어려움을 알고 두드림퀵이 꽃집과 은행, 신발가게 등과 정기 협약을 맺었다. 어르신들에게 최대한 많은 일감을 꾸준히 제공해 보기 위한 노력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두드림퀵과 함께하는 일이 중단되었을 때는 노원구청과 노원시니어클럽이 손을 잡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자가격리자들을 위한 키트 배달을 시니어 택배원이 맡도록 했다. 이씨는 "그때 하루에 해야 하는 배달 건수가 너무 많아서 힘들기는 했지만 일거리가 있어서 너무 좋았죠"라고 말했다.
실버택배원을 보는 시선을 바꾸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두드림퀵 조유민(22)씨는 "노인은 전자기기를 잘 쓰지 못한다는 편견이나 일을 못 한다는 시선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라며 "그래서 앱 사용 교육도 진행하고 인식 개선을 위해서 인스타툰 작가와 협업도 했죠"라고 말했다.
두드림퀵은 노인 일자리 사업의 허브 역할을 하는 지역 시니어클럽에서 교육 요청이 올 때마다 2인 1조로 앱 사용 교육을 진행한다.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시연과 실습까지 한다. 택배원 A씨는 처음 교육받던 때를 "(두드림퀵) 친구들이 한 명씩 붙어서 앱 보면서 굉장히 친절하게 설명해줬어요"라고 떠올렸다.
실제 택배원들은 아주 능숙하게 앱을 사용한다. 이씨는 "옛날에는 동사무소에서 하는 컴퓨터 교육이나 받았지만 이제는 휴대폰으로 게임도 하고 말이죠. 내 또래에 애니팡을 나만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걸요"라며 웃었다.
물론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택배원 A씨는 "예전에는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늙은이가 택배한다고 말 함부로 하고요"라며 택배원으로 일을 시작했던 초창기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지금은 우리가 일도 잘하고 친절하다고 소문이 났지"라며 웃었다. 정지혜 매니저도 "초창기에는 시니어 택배가 빠르지 않다고 항의하고 짜증을 내는 사람도 간혹 있었어요"라며 "그래도 사과드리고 잘 말씀드리면 다음에 또 두드림퀵을 찾아주고 하더라니까요"라고 했다.
두 택배원에게 택배 일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씨는 "같이 일하는 동료도 만나고, 수다도 떨고, 걸어다니니까 관절염 있던 것도 다 나았어요"라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얻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심해진 우울증에 일을 시작한 A씨도 "이 일하면서 43kg까지 빠졌던 살도 다시 찌고 사람들도 만나고 하니 좋아요"라며 "두드림퀵 학생들이 생일도 챙겨주고, 열심히 일하면 감사장도 주던데요"라고 말했다.
이씨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던 두드림퀵 김주형(19)씨는 오히려 '좋아해주셔서 감사했다'고 했다. 그는 "저희의 부족함에 죄송했지만, 한 고비를 같이 넘기면서 유대가 생기는구나"라고 느꼈다.
두드림퀵은 걸어 다니는 실버택배원의 노고를 최소화하도록 알고리즘을 설계했다. 지하철역에서 직선 거리로 700m 이상이면 택배원들이 버스를 탈 수 있도록 추가 요금을 받고, 5km 이상이면 주문을 할 수 없다.
하지만 간혹 산을 둘러 가거나 알고리즘에서 걸러지지 않아 배달 경로가 힘든 경우가 생긴다. 정씨는 "이영희 택배원님이 그런 힘든 케이스를 맡으셔서 저희한테 어려움을 호소하셨던 적이 있어요"라며 미안해 했지만, 이 택배원은 "그때 (정지혜 매니저가) 친절하게 응대해주고 나중에 선물이랑 감사장을 주더라고요. 그 마음이 예쁘고 그랬죠"라며 고마워했다.
봉사의 뿌듯함이 좋아서,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고 싶어서 '두드림퀵' 일원이 된 네 사람은 하나같이 "두드림퀵에 들어오고 나서 시니어 일자리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이제는 다른 건 잠시 접고 시니어 일자리만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다.
두드림퀵 사업은 올해 12월 공식적으로 종료된다. 하지만 조씨는 "사회적 가치를 유지하면서 사업을 마무리하는 것이 지금 마주한 가장 큰 과제"라고 전했다. 더불어 과수농가에서 버려지는 '못난이 과일'을 시니어클럽과 연계해 청으로 만들어 파는 새로운 사업도 구상해 더 많은 양질의 노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실버택배원 A씨와 이씨는 택배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할 것"이라는 의지를 내비쳤다. "손주들 왔을 때 용돈이라도 쥐여 주고 하는 게 좋아요"라며 실버택배원의 보수나 처우가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조심스레 전했다. 두드림퀵은 시니어 일자리 상황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모두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드림퀵에서 다음 매니저를 맡기로 한 장씨는 소셜 벤처 업계에서 대학생의 역할이 필요하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모두가 참여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보수도 없이 열정을 가지고 좋은 의도를 소중히 여기는 소셜 벤처 일은 대학생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했지만 "노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함께 일할 환경을 고민하는 건 모두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라고 물었다.
또 노인 일자리의 중요성이 주목받으면서 사업은 늘어나고 있지만 인력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장씨는 "함께 일해보면, 한 복지사님이 노인 일자리 사업 3, 4개씩 전담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라며 "전 세대가 함께 소통하면서 주체가 돼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