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방치가 끔찍한 범행으로…조현병 존속범죄, 치료·복지 연계 '절실'

입력
2022.03.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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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거부·복지 부재 속 보호자에 흉기 휘둘러
개정 정신건강복지법 환자 강제입원 어렵게 해 
'사법 입원제' '정신건강법원' 도입 목소리 커져

"치료감호 종료 후에도 치료를 계속 받을 수 있는 환경이 구비돼 있지 않다."

최근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12년과 치료감호를 선고한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 최수환)는 판결문을 통해 치료 환경 시스템 부재를 범죄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군 입대 이후 정신질환에 시달리다가 2015년 조현병 진단을 받은 A씨가 제대로 치료만 받았다면 범죄를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한 것이다.

A씨는 2019년 스스로 치료를 거부하면서 증상이 크게 악화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친척들과 어머니가 그를 떠났고, 결국 아버지 혼자 남아 그를 돌보다가 아들로부터 변을 당했다. 당시 아버지는 살해 위협을 느낄 때가 있었고, 이를 경찰에 신고하는 등 외부에 도움을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한다.

존속범죄 4건 중 3건, 환자 '치료 거부' 있었다

한국일보가 A씨 사건을 포함해 최근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이 선고한 조현병 환자에 의한 존속살해 및 존속살해 미수사건 4건을 분석한 결과, 3건이 환자 스스로 치료를 거부하면서 범죄 발생 가능성을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에게는 건강복지센터 등 행정지원기관의 손길이 닿지 않아, 치료의 책임을 온전히 가족이 짊어져야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조병구)는 지난 8일 잠자고 있던 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고 한 혐의로 기소된 10대 B군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치료감호를 명령했다. B군 역시 조현병 진단을 받은 상태였고, 약물치료를 거부하면서 망상증상이 심해졌다. B군은 경찰에서 "아버지가 친구를 사주해 SNS에 비방성 글을 작성하도록 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중증정신질환 환자 입원치료 어렵게 법 개정

전문가들은 조현병처럼 중증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의 존속범죄를 막기 위해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부터 손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2017년 5월부터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상 비(非)자의적 입원은 가족 동의로 입원하는 '보호입원'과 시군구 지자체장 동의로 입원하는 '행정입원' 및 '응급입원' 등 세 가지로 구분된다. 이 중 보호입원은 직계혈족 및 배우자 등 보호의무자 두 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문제는 비자의적 입원 시 1개월 내 입원적합성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심사 탈락 사유의 70%가 서류 미비일 정도로 절차가 까다롭다는 점이다. 결국 입원하려면 환자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데, 조현병 환자 대부분은 입원은 물론이고 치료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비자의 입원이 능사 아냐… 복지센터 증원 필요

비자의 입원이 능사는 아니다. 강제입원에 따른 인권 침해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는 데다, 입원만으로 범죄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치료과정에서 환자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강제적 조치로 환자들의 상태가 악화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5월 제대로 부축을 못한다며 훈계한 아버지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C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자폐성 장애와 조현병을 앓은 C씨는 4차례 입원치료를 받았고 10년 이상 통원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항소심에서 징역 7년에 치료감호 명령을 받아야 했다.

전문가들은 치료와 함께 복지서비스가 동반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정신장애인권연대 '카미' 대표인 권오용 변호사는 "지역 내 정신질환자를 찾아 관리하는 게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업무인데,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 운영이 잘 안 된다"며 "치료만큼 사회적응도 중요하지만 제도적 기반이 취약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주(州)에 따라 법원이 조현병 환자를 포함한 중증정신질환 치료와 사회적응을 관리·감독하는 '주체'다. 법원이 타인에게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중증정신질환자에 입원을 강제할 수 있다. 이후 환자 상태에 맞게 지역사회의 의료·복지서비스를 연결하는 '정신건강법원'(Mental Health Court)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의 박환갑 사무국장은 "중증정신질환자들 가운데 병원의 강압적 치료와 분위기에 되레 반감이 커져서 가족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도 있다"며 "사고를 막으려면 환자들이 '쉼터'처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에서 사회 적응을 위한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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