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일본과 평화조약 협상 중단… 日 ‘쿠릴 열도 반환’ 꿈 사라지나

입력
2022.03.22 17:45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 일본이 동참하자 대응조치로 양국 간 진행돼온 평화조약 체결 협상을 중단한다고 21일(현지시간) 선언했다. 일본 정부는 러시아의 조치를 수용할 수 없다며 반발했지만, 이로써 수십 년간 추진해온 남쿠릴열도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 반환 협상은 상당 기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러시아 외무부는 21일 웹사이트에 올린 ‘일본 정부 결정에 대한 대응 조치에 관한 성명’을 통해 “일본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취한 일방적 대러 제재가 명백히 비우호적인 성격임을 고려해 일련의 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외무부는 또 “러시아 남쿠릴열도와 일본 사이의 무비자 방문에 관한 1991년 협정과, 남쿠릴열도에 거주 일본인들의 고향 방문 절차 간소화에 대한 1999년 협정에 근거한 일본인들의 (남쿠릴열도) 무비자 여행도 중단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2016년 아베 신조 내각 당시 합의한 남쿠릴열도 내 공동 경제활동에 관한 일본과의 협의에서도 이탈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이 러시아를 제재한 것은 “전부 우크라이나 침략 때문으로, 일·러 관계에 전가하려는 대응은 매우 부당하다,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도 기자회견에서 교섭 중단에 대해 러시아 측의 “사전 설명은 없었다”며, 주일 러시아 대사에게 항의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영토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한다는 대러 외교의 기본방침은 불변”이라며 향후 대응에 대해선 “현 시점에서는 말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적국으로 싸운 러시아와 일본은 남쿠릴열도를 둘러싼 영토 분쟁으로 아직까지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평화조약 체결에 앞서 러시아가 실효 지배 중인 홋카이도 북쪽의 이투루프, 쿠나시르, 시코탄, 하보마이 군도 등 4개 섬을 돌려받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남쿠릴열도가 2차 대전 종전 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합법적으로 러시아에 귀속됐다고 주장한다.

아베 전 총리는 재임 시절 27번이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직접 대화하며 막대한 규모의 경제 협력을 선물로 주는 등 영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2018년에는 러시아 의향을 수용해 ‘2개 섬 반환’으로 목표를 낮췄다. 하지만 러시아는 2020년 헌법을 개정해 ‘영토 할양 금지’ 조항을 추가했고, 지난 9일에는 이들 섬에 외국기업을 유지하겠다는 ‘면세 특구’ 창설법을 처리하는 등 실효 지배를 강화했다.

일본 내에선 국제사회에 호소하자는 주장도 등장했다. 산케이신문 등은 ‘퍼주기 외교’의 성과가 없었던 만큼,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그동안 미국·유럽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남쿠릴열도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띄우자고 강조했다. 반면 야당인 국민민주당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는 러시아의 협상 중단에 대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푸틴 정권과 영토 반환 협상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며 “아베 정권에서 진행해 온 대러 외교를 ‘리셋’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