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902, 4,000, 그리고 1만4,700.’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숫자다. 각각 우크라이나 어린이, 민간인, 군인, 그리고 러시아군 사망자를 가리킨다. 정확한 집계도 아니고, 희생자는 계속 늘지만 이 기록만으로도 한 달이 채 안 된 전쟁이 남긴 엄청난 상처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러시아군이 쏜 박격포탄에 피란 가던 일가족이 쓰러지고, 빵을 사러 줄을 섰다 거리에 떨어진 포탄에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은 충격적인 영상과 사진이 공개됐는데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다. 전쟁 게임과 영화에나 나올 법한 무기들이 실제로 하늘을 날고, 헬기와 탱크에 맞아 폭발하는 비극적 장면이 반복되지만 이를 멈추려는 노력은 소극적이다.
국제사회는 무기력하다. 아니 제 잇속 챙기기 위해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만 요란하다. 러시아의 불법적이고 반인도주의적인 전쟁을 제어할 나라와 국제기구가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5대 강대국의 비토권에 막혀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장비 지원으로 생색을 잔뜩 내는 미국도 뒤로는 챙길 건 다 챙겼다. 대전차미사일 재블린을 생산하는 록히드마틴 같은 방위산업체 주가만 급등세다. 독일과 동유럽을 중심으로 미국산 무기를 잔뜩 수입하고 알아서 러시아 견제에 나서 주는 일석이조 상황을 즐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핵전쟁과 3차 대전을 피해야 한다’는 게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개입 자제 명분이지만 전황 장기화로 러시아와 푸틴 체제의 몰락을 기다려도 미국은 얻을 게 많다는 계산이 섰을 것이다.
‘푸틴의 흑화’가 가장 큰 죄악이다. 그러나 오바마-트럼프 행정부가 2014년 크림반도 강제병합 용인부터 시작해 고립주의 심화까지 전쟁 발발 가능성을 방치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정치와 외교의 가능성이 사라진 곳에서 평화 대신 전화(戰火)가 찾아왔다.
사람이 죽어 간다. 어떻게든 전쟁부터 멈춰 세워야 한다. 무고한 민간인이든, 참전한 군인이든, 명분도 없는 싸움의 희생자부터 줄인 뒤 훗날을 도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