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함락 위기에 놓인 우크라이나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 즉각 항복을 요구했다. 무차별 폭격으로 수백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고 수 천명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이들은, 되레 책임을 마리우폴 당국에 돌리며 뒤늦게 탈출로를 열기로 했다.
20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미하일 미진체프 국방통제센터 지휘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마리우폴에서 끔찍한 인도적 재앙이 발생하고 있다”며 “무기를 내려놓는 모든 이는 안전하게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통제센터는 러시아 총참모부(합참) 산하 지휘 기관이다 그러면서 모스크바 시간으로 21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4시)부터 마리우폴의 동ㆍ서쪽으로 ‘인도주의 회랑’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러시아 측은 마리우폴 당국과 우크라이나 군에 항복도 요구했다. 당국 관계자들을 ‘무고한 시민 수백 명의 목숨에 책임이 있는 혐오스러운 강도’라고 지칭하며, “최소한 인간적 면모와 민간에 대한 동정심이 있길 바란다”는 압박도 가했다. 영국 매체 더선은 이번 러시아의 항복 종용을 “러시아의 소름 끼치는 최후통첩”이라고 설명하며 “이들은 마리우폴 당국을 향해 ‘저항하는 사람은 군사 재판소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고 전했다.
마리우폴은 친러시아 반군 점령지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과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요충지다. 러시아가 이 곳을 점령하면 육로 회랑이 완성되는 까닭에 러시아군의 최우선 전략 목표로 꼽혔다.
실제 지난달 24일 개전(開戰) 이후 러시아는 마리우폴을 포위한 채 무차별 공격을 가하면서 현지는 ‘생지옥’이 됐다. 이미 주거용 건물 80%가 손상되는 등 도시는 황폐화했다. 민간인 희생도 급증하고 있다. 전날 주민 400명이 대피한 예술학교 건물을 공격했고, 최근에는 ‘어린이’라고 표시해둔 건물에 폭격을 가하며 잔혹함의 끝을 보이기도 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곳을 탈출한 시민을 인용, “모든 것이 불타고 사방에 시체가 있었다”며 “굶주린 사람들은 길 잃은 개를 잡아먹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마리우폴을 필사적으로 사수하고 있지만 전세가 이미 러시아 쪽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군이 도시 내부로 깊숙이 진격해 우크라이나군이 도시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