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직원이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지하철 시위에 대해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전략을 담은 내부 문건을 작성해 공유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17일 YTN방송 보도에 따르면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지하철 시위를 사례로'라는 제목의 프레젠테이션(PT) 자료가 서울교통공사 홍보실 언론팀 직원 이름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작성 시점은 2022년 3월로 표기됐으며 PT 표지에는 서울교통공사 로고가 찍혀 있다.
해당 문건의 내용을 보면 전장연 등 지하철 시위에 참여한 장애인 단체를 '여론전'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상대도 실점은 언제든 할 수 있다, 꼼꼼히 캐치하라" "출근길 시위 잠시 휴전 상태지만 디테일한 약점은 계속 찾아야"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또 "공사는 상대 실점을 공식적으로 물고 늘어지기 어렵다"면서 "또 다른 스피커도 고민 중"이라고 주장했다. 장애인 단체에 대한 반발감을 조장해 여론전을 펼치자는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문건은 '여론전'의 한 예시로 지하철에 타는 도중 장애인의 휠체어가 승강장과 열차 사이에 낀 사진이나 승강장 열차 문 앞에 서 있는 사진을 "공사 측이 캐치한 전장연의 미스"라고 규정하며 "사진 확보 후 '자연스럽게' 알리면서 고의적 열차 운행 방해를 증빙하는 것이 된다"고 표현했다.
또 문건은 지난달 9일 한 시민이 출근길 5호선 전동차 안에서 '할머니 임종을 보러 가야 하는데 전장연 측이 열차를 막아 갈 수 없다'며 항의한 사건을 성공적 여론전의 예로 제시했다. 해당 사건은 실제로는 장애인 시위자가 양해를 구하고 사과한 사건이었지만 '시민 대 장애인' 구도로 만들어 여론전을 위한 보도자료로 배포했다는 것이다.
문건은 장애인 단체와 공사의 대결 구도를 '우크라이나 대 러시아 전쟁'에 빗대면서 '배수의 진'을 친 소수자는 사기가 높은 우크라이나로, 공사는 '뭉쳐도 할 게 없는 다수'라면서 러시아에 비유하기도 했다. 장애인 이동권 운동을 무너트려야 할 전쟁의 대상으로 간주하면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빗댄 것이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보도 직후 문건을 삭제했다고 밝혔지만 장애인 문제 전문 매체인 비마이너는 작성자를 익명 처리한 전문을 공개했다. 문건의 다른 판도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날 공개한 사과문에서 "문건은 한 직원이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사내 자유게시판에 올린 것으로 공사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님을 밝힌다"며 "공사가 조직 차원에서 여론전을 전개했다는 내용 역시 사실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직원 개인의 의견에 불과할지라도 내용은 적절하지 않았다"면서 "재발 방지를 위해 직원에 대한 교육을 다시금 철저히 실시하는 것과 동시에 지하철 내 교통약자 이동권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해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여론은 서울교통공사의 해명을 신뢰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서울교통공사가 그동안 장애인 단체 시위가 발생할 때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장애인 단체의 불법시위로 정상적 열차 운행이 방해받고 있다" "장애인 단체의 시위가 종료됐다" 등의 메시지를 수시로 보내면서 열차 운행 지체의 원인으로 장애인 단체 시위를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전장연은 같은 날 보도자료를 통해 18일 서울교통공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사의 사과문은 우리를 또 분노케 한다. 이 문제는 개인 일탈이 아닌 조직의 잘못"이라면서 "교통공사는 꼬리 자르기로 사태수습을 꾀하지만 전장연은 공사가 이미 수차례 악의적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을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