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는 학생 번호를 정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별을 구분하여 학생의 키나 생일을 기준으로 번호를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이렇게 정한 번호가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지금은 성별 혹은 성별 구분 없이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정한다. 성별을 구분하여 번호를 정할 때에는 학년에 따라 앞쪽에 오는 성별을 바꾼다고 한다. 성이 'ㄱ'인 사람은 항상 앞쪽, 'ㅎ'인 경우 매번 뒤쪽 번호를 받는 점이 부담스럽지만 '가나다순'을 수긍한다. 키, 생일, 성별 대신에 '가나다순'을 선택한 데에는 사전의 낱말 차례인 '가나다순'이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차별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가나다순'으로 이름을 나열하고 국어사전에 단어로 올렸을까? '훈민정음'의 자음 순서는 지금과 다른데, 현재와 같은 자음 차례는 석범(石帆)이 1846년 우리말의 소리 등의 구별에 관하여 쓴 '언음첩고(諺音捷考)'에 처음 나타났다. '가나다순'으로 이름을 나열한 예는 1908년 발행된 신문에 보이며, 1947년 조선어학회(현재 한글학회)가 간행한 '조선말 큰사전'에 '가나다순'이 처음 실려 단어로서 인정받았다. '가나다순' 방식을 사용한 후 국어사전에 올라가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백 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가나다순'을 편리하게 사용 중이다.
세종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실 때 '글자'가 순서나 정렬 방법으로도 사용될 것이라고 예견하셨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가나다순' 낱말이 문자로 평등과 편리를 실현하고자 한 '훈민정음'의 창제 정신을 조금은 이어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