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년 차의 출판계는 의료체계 한계와 인명 손실 등 눈앞의 피해 너머의 본질적 위기를 따져 묻기 시작했다. 경제사학계 석학인 애덤 투즈 미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교수의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첫 1년에 대한 분석서와 'K방역'의 자화자찬 속에 소외된 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돌아본 책이 나란히 나왔다. 바이러스만 주시하던 데서 벗어나 재난 상황 이전부터 곪아 있던 경제·노동 위기의 진짜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들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1970년대에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궤적이 끝났음을 나타낸다. 또한 코로나바이러스는 앞으로 계속해서 찾아올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 시대의 총체적인 위기 가운데 첫 번째 위기, 즉 인류와 환경의 관계가 무너지면서 그 역풍으로 나타난 첫 번째 위기로 볼 수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첫해를 겪은 투즈 교수의 진단이다. 전작 '붕괴' '대격변' 등을 통해 글로벌 위기에 따른 세계의 변화 양태를 제시해 온 그는 신간 '셧다운'을 통해 팬데믹의 세계사를 다룬다. 경제사 연구자로서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경제적 피해와 정치적 공백이 얼마나 깊은지를 설명하는 데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저자는 2020년의 역사를 개별 역사를 포괄하는 거대한 역사라는 의미로 대문자 역사(History)로 규정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로 상징되는 세계화 위기였던 2020년에 발생한 코로나19는 2020년을 격동의 한 해로 만드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세계는 이미 불안감이 팽배했지만 코로나19 위기에 온전히 대처해낼 시스템이 없었다. 특히 현대 역사의 적수가 없는 동력으로서 자리를 공고히 하는 듯 보였던 신자유주의적 성장은 만병통치약이 아니었다. 세계 각국이 막대한 돈을 풀어 적극 개입하면서 신자유주의 질서의 둑이 무너졌고, 사회 구성원 간 불평등은 극대화됐다. "계층구조의 노동시장에서 코로나19 위기는 기존의 불평등과 단단히 결합했다."
저자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무능한 초기 팬데믹 대처에 대해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조직화된 무책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위험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관점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말한다. 신자유주의와 탈정치·탈국가, 빈부격차와 불평등, 긴축재정과 공중보건 예산 감축, 세계보건기구(WHO)의 역할 약화 등이 조직화된 무책임을 대표하는 키워드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와 더불어 책을 관통하는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첫 번째 인류세 위기라는 메시지다. 저자는 "앞으로 닥쳐올 환경 과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는 현대화의 첫 세기에 드러난 과학과 기술의 혁신적인 잠재력을 받아들이고, 이 잠재력을 전 세계 차원에서 실제로 발휘하고 완전히 활용해야 한다"며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2020년은 점점 더 감당할 수 없는 일련의 세계적 재난 가운데 첫 번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현실이 될 것이다"라고 적었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등장 전인 지난해 초까지의 상황만 반영돼 있어 모범적 방역의 예로 한국을 언급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코로나 시대 우리 일'이라는 부제가 붙은 '숨을 참다'는 코로나19 시대에 배제된 한국 노동자들의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는 책이다. 투즈 교수가 모범적 방역 사례로 거론한 'K방역'의 그림자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한국 정부가 한때 코로나19 확산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며 자부심을 보이는 동안 노동자들의 삶은 그대로 멈췄다.
특수고용·비정규직·초단시간 근로자 등 팬데믹 이전부터 법의 테두리 바깥에 있던 불안정 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기록한 르포 11편을 묶었다. 노동 현장 연구자 등 공저자들은 2년간 국가와 기업이 무엇을 했고 또 하지 않았는지, 팬데믹은 누구에게 이득을 안기고 누구에게 고통을 줬는지, 안정과 복지는 누구에게 돌아가고 누가 제외됐는지 질문을 던진다. 서문을 대표 집필한 송경동 시인은 "한국 정부는 특정 시기 코로나 확진자 수를 일시적으로 줄이는 방역에 성공했다"면서도 "또 다른 방역 대책이라 할 수 있는 다수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는 낙제점이었다"고 꼬집었다.
많은 이가 코로나19 이전의 삶을 그리워하지만 두 권의 책은 코로나19 이전의 삶이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방역 수칙의 적절성 여부에 관계없이 코로나19라는 특정 바이러스는 언젠가 세력이 약해질 터다. 하지만 바이러스 종식 이후에도 이런저런 삶의 위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숨을 참다'의 공저자 중 한 명인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의 지적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새로운 규범과 표준(New normal·뉴 노멀)이 아니라 더 나은 규범과 표준(Better normal·베터 노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