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백지화, 원전 최강국'으로 요약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원전 정책엔 일찌감치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 문재인 정부 기조와 엇갈린 공약으로 내놓았던 데다, 대세로 자리한 '친환경' 정책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넘어야 될 산도 적지 않다. 당장, 원전의 근원적 문제점인 영구적인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 설치부터 풀어야 한다. 글로벌 시장의 트렌드로 굳어진 탄소중립도 넘어야 할 허들이다. 이에 따라 주어진 신재생에너지의 균형발전까지 고려한 에너지 정책의 전반적인 수정 등은 해결해야 될 숙제다.
윤 당선인은 대선 정책공약으로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조화시켜 탄소중립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우선, 탈원전 정책을 폐기해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즉시 재개하고, 원전산업 생태계 활성화 및 세계 최고 원전 기술력을 복원하겠다는 공약 등이 언급됐다.
또, 안전성 평가를 토대로 최초 운영허가 만료 원전의 계속 운전 등으로 2030년까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40% 달성 목표도 제시했다. 아울러 원전을 기저전원으로 활용해 원자력 발전 비중을 합리적으로 유지하고 원자력을 신재생에너지와 함께 탄소 중립 추진의 주요 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내비쳤다.
윤 당선인의 원전 정책을 입안한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현 정부가 급진적으로 과도하게 신재생에너지를 확장하면서 발생한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재생에너지 기술의 실현가능성 등을 고려해 원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NDC 40%를 이행하기 위한 합리적 계획을 짤 것”이라고 덧붙였다.
17일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24기 원전 중 계획예방정비 중인 6기를 제외한 18기가 가동 중이다. 신고리 5·6호기와 신한울 1·2호기 등 총 4기가 건설 중이고, 신한울 3·4호기는 착공조차 못한 상태다.
친원전 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가장 시급한 현안은 고준위의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을 영구 처분할 처분장의 설치다. 사용후핵연료는 열과 방사능이 줄어들 때까지 원전 내에서 임시저장되면서 관리된다. 원전 내 저장 수조에서 약 5년 습식저장을 거친 사용후핵연료는 건식저장시설(맥스터)로 옮겨져 한시적으로 관리된다. 이후 원전 외부로 운반된 사용후핵연료는 일정 기간 중간저장 단계를 거친 후 지하 500~1,000m에서 영구처분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서 마땅한 장소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분석에 따르면 2021년 3분기까지 총 50만4,809다발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했다. 국내 가동 중인 모든 원전의 설계수명이 만료할 때까지 총 13만520다발이 추가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학회는 이런 수치를 바탕으로 수용시설의 예상 포함시점을 계산한 결과 2031년 고리·한빛 원전 본부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가득 찰 것으로 전망했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탈원전이든, 친원전이든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과제”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원전 정책은 나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친원전 정책에 이어 원전 최강국으로 가기 위한 원전 기술 첨단화로 이어지기 위해선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윤 당선인 원전 정책의 다른 한 축인 ‘원전 최강국’을 위해서도 사회적 공감대 형성은 절실하다. 원전 최강국을 천명하고 있는 만큼 국내 신규 원전 건설을 검토할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이 역시 설치 지역 주민들의 동의는 필수다.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 공동대표인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국민들에게 원전 기술에 대해 패배주의적인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것이 탈원전 정책의 병폐 중 하나”라면서 “맹목적으로 탈원전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원전의 문제를 피해갈 기적의 비법은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탈원전 폐지라는 용어를 굳이 쓰지 않더라도 다른 나라들도 힘들지만 하듯이, 법과 제도에 따라 원전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당선인은 측은 이렇게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기술과 경험이 축적된 대형 원전을 2030년까지 10기 수출할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대형 원전 수출시장의 여건도 마련됐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현재 원전 최강국인 러시아가 여러 제재들로 입지가 좁아져 원전 수출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당분간 한국과 중국이 경쟁하는 구도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상황에서 미국과 협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의 외교력 및 원천기술과 한국의 원전 설비 제작능력 등 시공 능력이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할 것이라는 게 윤 당선인 측 생각이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이번 정부 들어 여러 분야에서 소원해진 한미 관계 때문에 양국 간 원자력협력도 지지부진했는데, 다시 관계가 복원돼 긴밀하게 협력하면 원전 최강국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당선인 측은 소형모듈원자로(SMR)도 원전 최강국으로 이끌 수 있는 분야로 판단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약 10년 전 상대적으로 안전한 차세대 원자력발전 모델인 SMR의 초기 형태인 스마트 원전을 설계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중단됐던 기술 개발을 재개하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