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 언급했던 ‘전기요금 인상안 철회’ 약속에 대해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최근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훌쩍 넘는 등 원자재 가격 고공행진이 장기화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전기요금을 마냥 묶어 두는 건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일선 현장에선 현 정권 정책을 무작정 뒤집기보단 현실에 입각한 에너지요금 토대부터 정립해야 한다는 조언이 제기되고 있다.
17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윤 당선인의 "인상 백지화" 약속에도 불구하고 당장 다음 달부터 전기요금은 인상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앞서 정부는 기준연료비를 4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킬로와트시(㎾h)당 4.9원씩 총 9.8원을 올리기로 하고, 기후환경요금도 4월부터 2원 올린 7.3원으로 정했다. 이에 따라 연료비 조정요금을 빼고도 다음 달부터 전기요금은 6.9원 인상이 예정돼 있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연료비 연동제에 따라 분기마다 결정되는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은 별개다. 한전은 오는 21일 홈페이지를 통해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발표하는데, 지난달까지 꾸준히 상승한 최근 원료비 추이를 볼 때 연료비 조정 요금 인상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한전은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h당 3원 인상하는 안을 정부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기요금 최종 결정권을 쥔 산업통상자원부가 한전의 뜻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고, 이후 한전은 산업부 통보 결과를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공지한다. 다만 연료비 조정요금까지 오르면 그만큼 소비자 부담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탓에, 정부가 연료비 조정단가에 대해선 지난 분기에 이어 또 한 번 동결시킬 가능성도 높다.
업계에선 윤 당선인의 전기요금 인상안 철회 약속이 즉각 이행되기엔 시간상 촉박한 데다, 파생될 부작용에도 우려를 내놓고 있다. 당장 21일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가 발표되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검토부터 현 정부와 논의까지 필요한 시간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조정이 쉽지 않다.
앞서 한전 이사회와 산업부 전기위원회, 기획재정부 협의 등을 거쳐 발표된 기준연료비나 기후환경요금 인상안 또한 단번에 뒤집기엔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또 상장기업인 한전 이사회가 전기요금 인상 계획을 번복할 경우, 주주에 대한 배임 논란으로도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전기요금 장기 동결은 적자 상태인 한전에 돌아올 후폭풍이 상당하다. 지난해 한전의 적자는 원가에 해당된 연료비와 전력구입비 상승 등으로 5조8,000억 원을 넘어섰다. 지난달 액화천연가스(LNG) 톤(t)당 가격(149만1,204원)은 지난해 1월(45만2,554원) 대비 3배 이상 뛰었고, 유가와 유연탄 가격 또한 같은 기간 2~3배 수준으로 올랐다.
이에 따라 한전의 올해 1분기 적자도 지난해 연간 전체 손실과 비슷한 규모까지 나올 것으로 점쳐진다. 현재의 요금 인상 계획이 전부 반영되더라도 올해 한전 적자는 20조 원을 넘길 것으로 관측된다. 이 경우 한전의 경영악화와 각종 설비 투자 위축 등으로 전력산업 전반의 품질도 떨어질 가능성도 크다.
그렇다고 원전 비중을 단기간 내 끌어올릴 방법 또한 여의치 않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도 정비 중인 원전을 제외한 모든 원전이 가동 중인 상태다. 지난해 전력거래량인 53만7,014기가와트시(GWh) 가운데 원전 비중은 28.0%(15만441GWh)로,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의 27.1%(14만1,278GWh)보다도 높다.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유명무실했던 연료비 연동제를 새 정부가 손보거나 독립적인 기구를 조직, 에너지요금 책정을 맡기는 형태의 현실적 대안 마련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당장 새 원전을 건설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정권 내에 가동이 가능한 원전도 사실상 없다”며 “금리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결정하듯, 전기요금도 정치 영역이 개입할 수 없도록 독립적인 위원회를 통해 결정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