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채무불이행' 시계 째깍째깍... "신흥시장 영향 우려"

입력
2022.03.1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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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16일 달러표시채 2건 이자 지급해야
러 "루블화로 지급" 예고... 시장 "루블화 안 받아"
"전 세계적으로는 큰 영향 없을 것" 예측 속
"외국인 투자자 불안심리 가속... 신흥시장에 영향"

러시아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는 달러 채무에 대한 이자를 루블화로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국제 금융시장은 루블화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디폴트는 이미 현실화했다는 분위기다. 전 세계적 금융 경색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신흥시장에 미칠 파장은 작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로이터통신 등은 15일(현지시간), 러시아가 16일까지 2건의 달러화 표시 국채에 대해 1억1,700만 달러(약 1,450억 원)의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러시아가 갚아야 할 1,500억 달러 규모의 달러 채무 중 일부다.

시장은 러시아의 이자 지급 및 채무 상환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가 조만간 디폴트를 선언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서방의 경제 제재로 달러가 떨어진 러시아가 제 날짜에 이자를 지불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WSJ에 따르면 이날 현재 연 수익률이 4.75%인 2026년 만기 러시아 국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폭락해 액면가의 10% 이하로 거래되고 있다. 채권 투자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의미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전날 “(달러 대신) 루블화로 (이자를) 지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상 디폴트를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는 해석이다. 당초 달러로 상환한다는 조건을 위반하는 것은 물론, 루블화의 국제가치는 이미 휴지 조각이 된 만큼 받아들일 가능성 자체가 없다.

러시아가 채권이자를 달러로 지불하지 않으면 일단 4월 15일까지 30일간의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이 기간에 러시아가 갚을 경우 디폴트는 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유예기간도 기대할 바가 못 된다. 이미 러시아 주요 금융기관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ㆍ스위프트) 퇴출이 현실화했고, 러시아의 ‘돈줄’ 역할을 하던 국영 석유기업 가스프롬도 잇따른 서방의 제재에 직면해 달러화를 끌어오기 힘들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극적 휴전을 이끌어내더라도 서방의 제재가 언제 풀릴지는 미지수다.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할 경우 1917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집권한 볼셰비키가 제정 러시아의 빚을 갚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100여 년 만이다.

시장은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고 있다. 엘리나 리바코바 국제금융연구소(II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시장 전문지 ‘마켓워치’에 “러시아 국채의 대부분은 러시아 내부에서 소화된다”며 “(그 보다 규모가 작은) 해외 투자는 약 600억 달러 규모라, 전 세계적으로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진단했다. 문제는 신흥시장으로의 불안감 확산이다. 네덜란드 기반 글로벌 투자회사 아혼NV의 제프 그릴스 신흥시장 부채 책임자는 로이터통신에 “세계 시장을 불안하게 해 이머징마켓에 변곡점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1997년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서 시작한 아시아 금융위기 와중 한국이 IMF 구제금융 사태에 휩쓸렸던 것처럼 신흥 국가들에 유탄이 예상된다는 이야기다.

러시아의 국제시장 복귀도 난망하다. 리바코바 이코노미스트는 “부채 상환에 한 번 실패한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가 커진다”며 "러시아 국채가 국제 시장에 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아르헨티나의 경우 2001년 디폴트 선언 이후 15년이 지나서야 국채 시장에 복귀할 수 있었다고 WSJ은 전했다.

김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