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반숙 잘 만드는 건 여전히 인류의 숙제다

입력
2022.03.16 22:00
27면

끼니에 몇 십만 원 하는 고급식당이 서울에 드물지 않고 온갖 요리 기술과 이른바 미식이 매체에 넘쳐난다. 음식이 이미 미각과 생존의 열량을 넘어 과학적 이해와 유행과 멋의 영역에 들어가 있는 건 오래다.

그렇지만 그 날고 긴다는 셰프들도 달걀 하나 요리하는 데 여전히 쩔쩔맨다. 솔직히 반숙 달걀을 잘 삶는 방법에 대해서조차 아직 셰프들은, 아니 인류는 결론을 못 내고 있다. 자, 당신은 어떤 방법을 쓰는가. 그중에서 진한 소스처럼 노른자가 주르륵 흐르는 반숙은 여전히 미답의 경지다. 물론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흔히 열 개 중에 대여섯 개는 매끈하지 않고 달 표면처럼 울퉁불퉁하게 흉이 진다. 유튜브를 검색해봤는데, 어떤 외국의 유명 요리 유튜버조차 처음에 다섯 개를 삶더니, 나중엔 세 개만 보여줬다. 필시 두 개는 껍데기를 까다가 모양이 망가진 것이다. 달걀 안의 산성도에 따라서, 흰자의 조성 특성에 따라서도 껍데기 벗겨지는 결과가 달라진다는 게 과학계의 분석 결과다. 과학은, 분석은 했지만 방법까지는 찾아내지 못한 듯하다.

그래도 일단은 반숙란 잘 삶는 갖은 해결책을 찾아봤다. 우선은 찬물에 달걀을 넣고 중불에 천천히 가열하는 방법이다. 이는 센 불에 삶을 때 달걀이 달그락거려 껍데기가 깨져서 망치는 일을 방지해준다. 특히나 찬물에서부터 천천히 삶기 시작하면, 확실히 흰자와 노른자가 부드럽게 익는다. 요즘 유행하는 저온 조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찬물에서 시작해서 비등점에 도달하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끓는 채로 그대로 일정 시간(보통 5분 정도 삶으면 노른자가 소스처럼 되는 반숙을 기대할 수 있다) 계속 가열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끓으면 불을 끄고 그대로 오랜 시간 방치해서 천천히 익히는 방식이다. 이는 더 적극적인 저온 조리다. 달걀이 더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물의 양이나 부엌의 기온, 냄비의 두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아주 예민한 방법이며 반복해서 데이터를 잡아야 한다. 덧붙여서, 흔히 달걀 삶을 때 식초를 넣으라고들 하는데, 이는 큰 의미가 없다. 깨진 껍데기 사이로 흰자가 흘러나오는 걸 식초가 굳혀준다는 건데, 이미 깨진 달걀은 식초를 드럼으로 부어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다.

반숙란은 역시 껍데기 까기가 난제다. 소금을 넣고 삶으면 효과 있다고 하지만, 글쎄다. 달걀의 구조적 특성을 이용한 도구도 있다. 인터넷에 파는 '달걀침'이라고 하는 도구를 쓴다. 달걀의 공기 주머니 부분(뾰족하지 않은 쪽. 기실이라고 한다)을 침으로 콕콕 찔러서 삶으면 잘 벗겨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 역시 효과는 아주 미미하며, 잘못하면 침으로 찌를 때 달걀 껍데기에 균열이 가서 문제가 생긴다. 달걀을 삶은 후 껍데기 전체나 공기 주머니가 있는 쪽을 톡톡 깨서 균열을 일으킨 후 찬물에 담가 두는 방법을 권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해 두면 물이 껍데기와 흰자 사이에 침투하여 껍데기가 잘 벗겨진다고 주장한다. 살짝 효과가 있지만 역시나 기대만큼은 아니다. 달걀이 묵은 것일수록 더 잘 까진다고도 한다. 이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껍데기 잘 까자고 묵은 달걀을 사오거나, 일부러 묵힌다는 건 용납이 되지 않는다. 묵은 달걀이라고 완벽하게 벗겨지는 것도 아니다.

반숙란 하나도 해결 못 하는데 코로나 백신을 척척 만드는 걸 보면 또 대단한 인류다. 이 역병은 언젠가 끝나겠지만, 반숙란 껍데기 제거기는 출시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또 인류다.


박찬일 요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