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나무, 빛으로... 아프리카 건축의 획을 긋다

입력
2022.03.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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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프란시스 케레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오는 방 안에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장면이 기억나요. 우리는 그 공간에서 서로를 친밀하게 느꼈고, 또 안전하다고 느꼈죠. 이게 제가 건축을 처음 인식했던 감각입니다."

건축의 불모지에서 건축계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건축가 프란시스 케레(56)가 2022년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하얏트 재단이 15일(현지시간) 밝혔다. 이 상이 제정된 1979년 이후 첫 아프리카 출신 수상자다. 심사위원단은 "케레는 주변 환경, 거주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는 건물을 만들었다"며 "그의 건물은 가식이 없으면서도 우아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케레는 1965년 부르키나파소의 간도에서 태어났다. 변변한 건물은 물론, 식수와 전기 부족에 시달리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사례도 그가 처음으로, 이마저도 마을에 학교가 없어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공부해야 했다. 목공 분야 직업 연수생으로 발탁돼 1985년 독일 베를린으로 향하면서 건축에 눈을 뜨게 됐다. 1995년 독일 베를린공대에 입학해 건축학을 전공했다.

케레는 이내 베니스 비엔날레와 같은 전시회에서 주목받는 건축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 건축가로서 첫 프로젝트도 고향에 초등학교(2001년 준공)를 짓는 일이었다. 어렸을 때 열악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게 동기가 됐다. 그는 "시멘트 블록으로 지어진, 환기가 안 되고 빛이 부족한 교실에서 한 반에 100명이 넘는 학생들과 공부했던 경험이 언젠가는 더 나은 학교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그는 지역의 흙으로 만든 점토 벽돌을 이용해 냉기를 가두면서도, 높고 돌출된 지붕으로 공기가 잘 순환하는 학교를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



케레는 빛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이를 건축의 한 부분으로 끌어들인다. 열기는 차단하면서도 빛은 받아들이기 위해, 외벽에 일정한 틈을 만들곤 한다. 빛은 이 사이로 여과되며 내부를 밝힌다. 그가 2018년 모잠비크에 설계한 학교도 벽에 빈 공간을 반복적으로 설치해 "빛이 학생들에게 신뢰감을 불러일으키도록" 의도했다.

서아프리카 전통 역시 케레의 작품을 관통하는 요소다. 그가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음악 축제, '코첼라' 당시 설계한 알록달록한 고깔 모양의 임시 구조물이 대표적이다. 이는 그의 고향에서 신성시하는 바오밥나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심사위원단은 이에 대해 "그의 건축은 지역성이 어떻게 보편적 가능성이 되는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전히 말리, 토고, 케냐,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에서 학교, 병원, 국회와 같은 공공 시설을 작업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건축가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간도 초등학교가 준공된 후 학생 수는 120명에서 700명으로 늘었다. 마을에는 이어 교사 주택(2004년 준공), 도서관(2019년 준공)이 들어서며 교육 기반 시설이 확대됐다. 단순히 학교, 교육기관을 짓는 게 아니라 '교육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돈이 많든 적든 모든 사람은 양질의 삶과 편안함을 누릴 자격이 있다"며 "우리는 연결돼 있고, 더 많은 사람이 인류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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