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원 164명, '이해충돌' 겸직 금지 단체 버젓이 신고

입력
2022.03.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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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초의원 겸직 신고는 ‘있으나마나’
86개 의회 164명 '사임 대상' 겸직 신고
의장에게 사임 권고 받은 의원은 0명
지자체 예산 지원 받아 이해충돌 소지
"이해충돌방지법조차 적용 안돼 심각"

“그 시의원이 부회장은 맞는데, 활동은 안 하고 있습니다.”

바르게살기운동 충남 당진시협의회 박모 회장은 지난 1월 취재진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서영훈(56∙국민의힘) 당진시의원은 2018년 6월 당선됐지만, 이후에도 2년이 넘도록 바르게살기운동 당진시협의회 부회장직을 겸하고 있었다. 이 단체는 정부가 지방의원의 임직원 겸직을 금지한 공공단체에 해당한다. 당진시 예산을 받아 운영되고 있어 시의원 활동과 이해충돌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전국 226개 기초의회에서 시·군·구 의원 2,978명이 주민들 손으로 선출된 직후인 2018년 7월 행정안전부는 '지방의원 의정활동 안내서'를 배포해 “지방의원이 공공단체 관리인 직을 겸하는 것은 지방자치법 위반”이라고 명시했다. 지자체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 단체 임직원을 겸하게 되면, 예산심의 등에서 직접적 이해관계가 형성돼 공정한 의원직 수행에 장애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안부는 이에 해당하는 공공단체로 △한국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협의회 △새마을운동협의회 △각급 체육회 △생활체육회지방조직 △지역사회복지협의체, 자원봉사센터, 노인복지관 △YMCA 등 30종류의 단체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지방자치법은 이들 단체에서 겸직하는 기초의원에 대해선 의장이 사임을 권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이해충돌 소지를 없애기 위해 30종류의 단체에 대해선 법적으로 겸직을 금지하고 있는데도, 한국일보 조사 결과 전국 86개 기초의회에서 의원 164명이 버젓이 겸직 신고서에 해당 단체 이름을 기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의장으로부터 사임 권고를 받은 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금지된 겸직' 계속 맡아도 아무 문제없어

당진시의회 서영훈 의원은 겸직하면 안 된다고 법에 명시한 단체에 무려 8곳이나 속해 있었다. 서 의원은 △자유총연맹 당진지회 부회장 △YMCA당진지부 위원장△당진시 역도연맹 이사 △당진시바르게살기협의회 부회장 △당진1동 체육회 △당진시 축구협회 부회장 △당진시 시니어클럽 운영위원장 △참사람소망의집 운영위원장 등을 겸직하고 있다고 시의회에 신고했다. 모두 당진시 위탁사업을 맡거나 당진시 보조금을 받는 단체다.

8개 단체 가운데 바르게살기협의회 부회장직은 최근(1월 19일 기준)까지도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서 의원은 이에 대해 “2018년 당선 후 해당 단체 회의에 거의 참석하지 못했고, 임기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7개 단체의 경우 겸직 신고서와 실제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 서 의원은 YMCA당진지부 시민위원장 자리를 시의원 임기 2년째인 2020년 사임했지만 변경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아 당진시 조례를 위반했다. 역도연맹이사와 축구협회 부회장도 시의원 당선 당시 직위를 유지하다가 중도 사임했지만 역시 신고하지 않았다. 그는 “(겸직 단체에선) 순수하게 봉사활동을 했고, 직을 이용해 특혜를 주고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명회 당진시의원(55∙국민의힘)도 2018년 6월 당선 직후 신고한 7건의 겸직 가운데 ‘외부이사’로 기재한 사회복지법인(어린이집) 2곳이 포함돼 있었다. 법인등기부를 살펴본 결과, 2곳 모두 지난해까지 등기이사 재직 기록이 있었다.

당진시 관계자는 “김 의원이 재직한 어린이집에는 매달 시 예산으로 운영비가 지급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의회에 따르면 김 의원은 지난해 12월 어린이집 이사직 임기가 만료돼 사임했고, 겸직 변경사실은 올해 신고했다. 김 의원은 “해당 직위는 단체 관리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자문에 따라 직위를 맡았지만, 행안부 질의를 통해 겸직 가능 여부를 명확히 파악한 뒤 임기 연장 없이 사임했다”고 해명했다.

8명 중 6명이 사임 대상 겸직 신고

강원 삼척시의회에선 전체 시의원 8명 가운데 6명이 사임 권고 대상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삼척시의회 의원 윤리강령 및 윤리실천규범 등에 관한 조례에선, 지방자치법에 의해 겸직을 금지한 직을 겸해선 안 된다고 규정했지만, 삼척시 보조금 등 재정 지원을 받는 단체 임직원을 겸할 수 없다는 세부 조항은 없었다. 2019년 7월 이전에는 의장의 사임 권고 조항도 없었다.

김억연 시의원(54∙더불어민주당)은 2014년 1월 2일부터 삼척시세일링연맹 전무이사로 재직 중이라고 신고했다. 김 의원은 이에 대해 “시의회에서 겸직 위반 사항으로 안내 받아 2018년 7월 사임 의사를 표했고, 연맹에서 사임 처리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연맹 관계자는 그러나 최근 본보 통화에서 "김 의원은 지금도 재직하고 있다. 세일링연맹은 삼척시의 엘리트스포츠단체로 삼척시 지원을 받아 경기에 출전한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이밖에 △사단법인 이사부기념사업회 사무이사 △사단법인 동안이승휴사상선양회 이사 △삼척기줄다리기보존회 사무국장 등 삼척시 보조금을 받는 단체 3곳에서도 겸직하고 있었지만, 당선 40여 일 뒤인 2018년 7월 29일까지 재직한 것으로 신고했다. 김 의원은 “당선 뒤 겸직 위반이라고 인지한 즉시 사임하고 시의회에 변경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양희전 시의원(57∙국민의힘)도 지자체 보조를 받고 있는 삼척시 체육회 감사직을 2016년 3월 29일부터 2018년 9월 1일까지 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양 의원은 겸직 변경 신고를 하지 않은 경위에 대해 “착오로 신고가 누락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정훈 삼척시의회 의장(61∙더불어민주당)은 사임 권고가 한 건도 없었던 이유에 대해 “겸직 위반 발생 시 의원들이 즉시 물러나 사임 권고가 필요 없었다”고 주장했다. 겸직 신고가 부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의원 윤리강령 조례를 개정하고, 의원들과 의회 담당 직원들을 철저히 교육하겠다”고 말했다.


’합법 겸직’하며 조례 ‘셀프 제정’도

지방자치법이나 행정안전부 지방의회 운영가이드북에서 금지한 겸직은 아니지만, 자신이 겸직한 단체와 관련한 조례를 대표 발의해 논란이 된 기초의원들도 있었다.

충북 청주시의회에 따르면 변은영 의원(52∙더불어민주당)은 2019년 9월 11일부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청주시협의회 지회장을 겸직하면서 2020년 10월 16일 ‘민주평통자문회의 청주시협의회 지원 조례안’을 대표발의했다. 같은 해 12월 14일 가결된 조례는 청주시 예산으로 이 단체를 지원할 수 있도록 정했다.

변 의원은 이에 대해 “민주평통자문회의 청주시협의회는 (조례보다 상위인) 기존 법령에 따라 청주시 예산을 받고 있었는데, 조례로 이런 부분을 구체화한 것”이라며 "청주시 예산을 더 받기 위한 조례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한국기원 홍보이사를 2017년 10월부터 겸직 중인 김희창 삼척시의원(55∙더불어민주당)도 2020년 3월 한국기원 연수원의 삼척시 유치를 위한 ‘한국기원 연수원 및 힐링센터 유치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대표 발의했고, 시의회는 이를 원안 그대로 가결했다. 김 의원은 “한국기원이 삼척시에 먼저 제안해, 특위를 구성해 검토했지만 유치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 내렸다”며 “더 이상 추진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겸직을 금지하는 취지를 감안하면, 기초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겸직 범위를 넓게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법령해석과 관련한 자문을 맡고 있는 한 교수는 “특정 단체의 겸직이 위법이 아니더라도, 소속 단체가 이득을 보는 조례를 발의했다면 명백한 이해충돌”이라고 지적했다.

이동영 더좋은지방자치연구소장은 “법에 명시한 겸직 금지 규정만 위반하지 않으면 겸직이 가능한 것처럼 해석해선 안 된다”며 “이권 개입과 비리를 사전에 차단하려면 법령상 항목 유무로 판단하기보다는 의원들의 행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충돌방지법이 오는 5월부터 시행되지만 기초의원들에게 적용되기 쉽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이해충돌방지법은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공직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수당' 개념으로 보수를 받는 기초의원의 경우 겸직으로 이해충돌이 생겨도 처벌할 법적 수단이 없다"며 "지방의원들의 겸직 규정을 이해충돌방지법과 연계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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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종 기자
임세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