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찾는 기자들

입력
2022.03.16 18:00
22면

편집자주

단단히 연결된 우리를 꿈꿉니다. 독자, 콘텐츠, 뉴스룸이 더 친밀히 연결된 내일을 그려봅니다. 늘 독자를 떠올리며 콘텐츠를 만드는 한국일보의 진심을 전해드립니다. 연결을 꿈꾸며 저널리즘의 본령을 꼭 붙든 한국일보 뉴스룸의 이야기, '연결리즘'에서 만나보세요.


더 좋은 세상은 가능할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이런 기대가 큰 독자들에게 뉴스를 읽고 보고 듣는 경험은 꽤 자주 고통이 된다. 세상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를 뉴스창에서 찾기가 어려운 탓이다. 자연스레 독자에게 기자는 세상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고 폐부를 들추고 전쟁, 질병, 내분 등 나쁘다는 소식은 죄다 끌어다 전하는 존재로 인식되기 쉽다. 언론계에선 이를 숙명이나 당연한 현실로 여기는 경우도 적잖다. 감시견을 자처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인과인데다, 언론인은 그저 냉정한 관찰자여야지 결코 선수(player)가 돼선 안 된다는 믿음이 강할수록 이런 광경에 별다른 회의를 갖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고발 본능’에 독자들이 무척 지쳤다는 점이다. 물론 “누군가 이런 문제를 알리고 있어 다행이다”, “계속 힘내서 알려달라”는 성원도 있다. 하지만 독자들이 늘 이렇게 성원하기엔 문제적 고발도 적지 않다. 어쩌면 더 많다. 문제를 알려 세상을 개선하려는 것인지 그저 분노를 유발해 장사를 하려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보도, 한숨이 푹푹 나오는 심각한 사회문제들을 쭉 전시해놓고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라는 섣부른 맺음말로 허무하게 마무리한 뒤 다음 고발거리를 찾아 떠나는 경우 등이 그렇다. 해법과 대안은 ‘전문가, 국회, 정치권이 나서서 이제부터 열심히 찾아야 한다’는 식이다. 독자의 뇌리엔 “어쩌라고?”라는 의문만 남는다.

이를 두고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는 저서 ‘문제해결 저널리즘’(인물과 사상사 발행)에서 “더 많은 질문을 끌어내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저널리즘”, “현상이 아니라 구조에 관심을 기울이는 접근”, “답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변화를 추적하면서 최선의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으로서의 솔루션 저널리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언론도 억울한 측면은 있다. 어떤 문제는 레거시 미디어에서조차 “여러분! 이 문제 진짜 심각해요. 내가 알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아요”라고 외치고 또 외쳐도 주목받기 어렵다. 복잡한 이슈일수록 적나라하다 싶을 정도로 파헤치고 나서야, 해결 주체들이 마지못해 문제를 인정할뿐더러 그 전 단계에서 모두가 이런저런 핑계로 지칠 때도 많다. “반응이 너무 없는데 읽히고 있는 것일까?”(기자), “이게 우리가 매번 이 정도로 다룰 일이 맞아?”(매체 간부), “또 그 얘기야? 저 매체 이거 왜 띄우는 거야?”(독자) 이런 핑계들이 맞물린 결과가 ‘해법실종 저널리즘’을 만드는 식이다.

불행 중 다행은 이를 바꾸려는 고민들이 곳곳에서 꿈틀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일보 어젠다기획부 마이너리티팀이 보도한 ‘중간착취의 지옥도’는 이런 맥락에서 문제를 보다 집요하고 구조적으로 드러내되 동시에 해결책과 대안에 대해 더 충분히 말하고, 해결의 주체들을 독려하는데 공을 들인 결과물이었다. 학술적 혹은 전통적 의미의 솔루션 저널리즘과는 결이 다른 대목이 있지만, 섣불리 새로운 ‘나쁜소식’으로 조명을 옮기기보다 관심을 놓지 않고 그 사안이 해결될 때까지 추적했다. 문제 상황의 전달 그 자체에 매달리기보다 문제 해결의 방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 주체는 누구인지 등을 집요하게 다뤘다.

남보라·박주희·전혼잎 기자로 구성된 취재팀은 우선 노동자들의 삶과 급여명세서에 천착했다. 콜센터 상담원, 경비원, 청소 노동자, 자동차 부품 업체 노동자 등 용역·파견 업체에서 거액의 월급을 떼이는 노동자 100명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한 줄 한 줄 콘텐츠에 담겼다. 나아가 이 착취를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들을 묻고 살피고 종합하고 추적했다. 전문가들과 고민하고 고용노동부의 문을 두드렸고, 국회를 찾았고, 청와대에 문의했고, 그 과정에서 거듭된 거절과 거부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독자들은 “이렇게 해결할 방법이 있긴 하네”라며 안도하기도, “기자들이 이렇게 찾아갔는데도 저 정도면”하고 탄식하기도 했다. 답을 찾는 여정은 좌절의 연속이었지만, “부당한 현실을 보도했는데, 그 현실이 바뀌지 않는 것만큼 기자들을 허탈하게 하는 건 없다”는 고민이 거듭 취재팀을 움직였다. 입법화를 위한 노력은 1년을 넘겨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흔치 않았던 시도라 뉴스룸 내부에서조차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하느냐”며 놀라워하는 반응도 있었다.

물론 갈 길은 멀다. 무엇보다 애써 힘겹게 착취 피해를 토로한 노동자들의 고통을 줄여줄 제도 개선이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남은 숙제가 많다. 기자들이 꾸준히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이 문제의 해결 과정에 동참하는 일, 이런 보도가 뉴스룸 일부의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기자들이 자신의 최전선에서 대안을 말할 수 있도록 뉴스룸의 구조와 일하는 방식을 개선해나가는 일, 즉 뉴스룸을 시민의 것으로 되돌리는 일 등이다.

더 좋은 세상은 가능할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무엇’을 뛰어넘어 ‘어떻게’의 답을 갈구하는 기자들이 이곳 뉴스룸에서 숨쉬는 한, 뉴스를 기다리는 독자들이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해 기자들을 성원하고 답 찾기에 동참하는 한, 답은 언제나 예스(Yes)일 것이다.

김혜영 커넥트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