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에게 안내견 옷 입히지 말아주세요" 안내견 학교가 부탁한 까닭은

입력
2022.03.16 16:00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안내견 사칭 관련 공지 올려
"훈련되지 않은 개가 안내견으로 오해"
"장애인과 안내견에게 어려움 주는 행위 멈춰야"

"반려견 리트리버에 안내견 문구를 적지 말아주세요."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공식 홈페이지에는 '안내견 옷 착용 관련 안내'라는 팝업 공지가 14일 올라왔다. 공지에는 "반려견 리트리버에게 안내견 문구가 적힌 옷을 입혀 공공장소에 출입하는 사례가 목격된다"며 "이러한 사례는 안내견들의 사회 활동을 힘들게 만든다"는 내용이 담겼다.

누리꾼들은 "어떻게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사칭하냐" "도덕성이 부족하다" "반려견 주인인데, 저 옷을 어디서 구해서 사칭하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국내 공인 장애인 보조견 양성기관 세 곳 중 1호이자 가장 규모가 크다. 안내견학교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훈련 과정에서 안내견으로 뽑히지 못하거나 중도 탈락한 개에게 안내견 옷을 입혀 다니는 사례를 제보받았다"며 "(안내견 양성 과정 중에는) 갈 수 있었던 장소에 더 이상 출입이 안 되자 임의로 안내견 조끼를 입혀 돌아다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되려면 일반 가정에서 1년 동안 지내며 사회화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을 퍼피워킹(Puppy Walking)이라고 부른다. 시각장애인과 생활하면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미리 겪어보고, 사람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안내견 양성기관에서 훈련을 받기 전, 안내견으로 적합한지 평가를 받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개는 탈락한다.


"안내견 단어가 아닌 증명 표지가 판단 기준"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라는 문구가 적힌 노란색 조끼.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훈련된 시각장애인 보조견들이 입는다. 흔히 이 조끼만 입고 있으면 안내견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지만 장애인복지법 제40조에 따라 보조견이 실제 공공 장소에 출입할 수 있는 근거는 '보조견 표지'다.

누구든지 보조견 표지를 붙인 장애인 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이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거나 공공장소, 숙박시설 및 식품접객업소 등 여러 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출입하려는 때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여서는 아니된다. 전문훈련기관에 종사하는 장애인 보조견 훈련자 또는 장애인 보조견 훈련 관련 자원봉사자가 보조견 표지를 붙인 장애인 보조견을 동반한 경우에도 또한 같다.
-장애인복지법 제40조(장애인 보조견의 훈련‧보급 지원 등)


안내견학교 관계자는 "하네스에 붙어 있는 보건복지부 인증 '장애인보조견' 표식이 공인된 안내견을 구별할 수 있는 장치"라고 말했다. 하네스는 시각장애인이 안내견을 붙잡고 있는 목줄과 같은 개념으로, 서로가 움직임을 인지하면서 보행하도록 돕는 기구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공공장소 출입에 제한이 없는 개들은 ①안내견 양성기관이 훈련 목적으로 데리고 나온 개 ②퍼피워킹(Puppy Walking)을 위해 자원봉사자가 데리고 나온 개 ③실제 장애인과 함께 다니는 개다.

장애인 안내견으로 활동하는 개들은 노란색 조끼를, 훈련 목적의 개들은 형광색 조끼, 퍼피워킹 개들은 주황색 조끼를 입는다. 그 위에 걸쳐진 하네스에 보건복지부 도장과 함께 안내견 또는 예비 안내견임을 증명하는 표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안내견이 제도적으로 출입이 가능하게 된 것은 첫 여성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해 2020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일명 '조이법'(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큰 역할을 했다.

사실 김 의원에 앞서 2004년 17대 국회에서 시각장애인 최초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정화원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에 안내견과 함께 들어가는 것을 추진했으나 국회 사무처의 부정적 반응으로 좌절되었다. 하지만 16년이 지난 김 의원과 안내견 '조이'는 국회 본회의장에 나란히 들어섰다.

'조이법'이 시행된 해 롯데마트 잠실점에서 시각장애인 안내견 훈련을 받던 개의 매장 입장이 거부당하면서 크게 논란이 일어났고, 뒤늦게 마트 측이 모든 지점에 '안내견은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라는 안내문을 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시행 착오를 겪으며 안내견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조금씩 나아지는 상황에서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견되면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가 이를 알리기 위해 발빠르게 공지문을 올렸다.


“장애인과 보조견 생활에 불편 끼치는 악용 사례 없어야”

일부 누리꾼들은 이런 사례를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안내견 학교 관계자는 "관련 법안이 있는 게 아니라 법적 처벌은 불가능해 보인다"며 "상식적이고 도덕적인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사례가 반복되고 훈련되지 않은 개들이 안내견 옷을 입고 실수를 하면 장애인 보조견을 바라보는 인식이 나빠지거나 제재가 가해져 장애인들의 삶에 불편이 생길 수 있다"며 "더 이상 이러한 사례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소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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