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대비 여성의 임금 66%...'구조적 성차별' 때문일까? 아닐까?

입력
2022.03.19 12:00
성별·세대별 일자리 데이터 분석 
남성 대비 여성 임금 20대는 92%·30대는 88% 
남 "세대별 성차별 달라" vs 여 "유리천장은 곧 와"
기울어진 육아·가사 책임 바꿔야 젠더 갈등 해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이 한마디가 가져올 파장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상상했을까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적폐청산도, 대장동도 아닌, 자신의 성인지 감수성이 여론의 도마에 오를 것이라고요. 저 말이 보도되자마자 일부 매체와 여성단체들은 '구조적 차별은 있다'는 근거를 쏟아냈습니다. 대체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인 성별 소득격차, 관리직 여성비율 등이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여성단체들이 제시하는 성차별 근거들은 사실 성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현상'일뿐이라서 윤 당선인이 말한 구조적 차별, 즉 '법과 제도'에 의한 성차별의 직접 근거로 보긴 어렵습니다. 법과 제도는 성차별을 방지하고 있는데, '공정 경쟁'의 결과로, 어쩌다보니 여성 임금이 남성의 3분의 2에 그친다는 주장도 가능한 거죠.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여성은 불평등한 취급을 받고 남성은 우월적 대우를 받는다는 건 옛날 얘기"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7월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1960~70년대에는 한국의 여성들이 교육이나 일자리에서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부 지점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건 어머니 세대 이야기"라고 일축했습니다. "2021년 한국에서 어떤 여성도 기본 교육에서 배제되지 않고 일자리에서도 평등한 기회를 갖는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성 불평등이 있다고 주장한다"는 거죠.

그래서 저 '성차별 근거'를 세대별로 뜯어봤습니다. 2030 남성의 불만도, 2030 여성의 불안도 나름의 이유가 있더군요. 구조적 성차별을 보완한다는 '여성할당제'의 영향도 직종별로 살펴봤습니다.


성별 임금격차 연령별로 뜯어보니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OECD 최고 수준이죠. 2020년 기준 66.3%로 남성 근로자가 100만 원을 벌 때 여성 근로자는 66만3,000원을 벌었습니다. 한데 세대별로 나눠보면 차이가 큽니다. 19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성인지통계에 따르면 20~24세 여성 임금은 남성 대비 93.8%, 25~29세는 92.4%, 30~34세는 88.6%였죠. 특히 '양질의 일자리'라는 500인 이상 대기업의 성별 임금 격차는 25~29세 94.1%, 30~34세 89.6%로 더 적었습니다.

이 정도 차이라면 남성이 화학‧중공업 같은 위험하고 노동 강도 높은 직종에 더 많이 있기 때문에 임금도 더 받는다는 주장도 수긍할 수 있겠네요. 미국의 성별 임금격차를 연구해온 클라우디아 골딘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인구 총조사 목록에 있는 500개 직종 중 성별에 따라 발생하는 소득 격차의 3분의 2는 직종 간 요인이 아니라 직종 안 요인"이라고 말합니다('커리어 그리고 가정', 생각의힘 발행). 바꿔 말하면 성별 임금 격차 원인의 3분의 1은 실제 남성이 어렵고, 힘들고, 돈도 많이 버는 직업을 많이 갖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거죠. 2030 남성들이 "또래 여성들의 성차별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일겁니다.

문제는 '이 정도 차이'로 사회 생활을 시작해 갈수록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사실이죠. 여성 임금은 기혼자들이 '본격 육아'를 시작하는 35~39세에 남성의 79.7% △40~44세에 69.5% △45~49세에 58.6%로 5년마다 10%포인트 가까이 떨어집니다. 50대 이상 여성은 대략 남성의 절반가량 임금을 받게 되네요. 적어도 일자리에서 갖는 2030 여성들의 성차별 인식은 '도래할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됐다는 말입니다.

여성의 불안이 과장된 건 아닙니다. '대학 나온 중년 여성이 남성보다 적어' 저임금 종사자가 많을 거란 통념은 틀렸다는 소립니다. 종로학원이 최근 20년 동안 일반계 고교 성별 대학 진학률을 비교한 결과 이미 2000년부터 일반고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84.6%)이 일반고 남학생(83.4%)을 앞섰습니다. 일반고, 전문고 진학 비율도 성비 차이가 거의 없었고요. 이제는 불혹이 된, 밀레니얼 세대 여성들조차 5년에 한 번씩 '같은 스펙'의 남자보다 10%씩 월급을 깎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행한 '2021 성 격차 보고서'에서도 한국 여성의 학력과 건강‧수명은 남성 대비 97.3%, 97.6%로 거의 차이가 없었지만 경제 참가율과 정치 권한은 58.6%, 21.4%에 불과했습니다.


'온 콜' 감당해야 승진하는 사회 바꿔야

인적 자원 수준에서 남녀가 비슷한데, 이런 격차는 왜 생기는 걸까요. 골딘 교수의 연구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미국에서도 여성 대학 진학률이 남성과 비슷해진 1980년대 이후 남성 대비 여성 임금 비율이 84%에서 도통 늘지 않았답니다.

골딘은 이 원인을 고임금 일자리의 특징에서 찾았는데, 하나같이 직장의 요구에 '몸 바쳐 일하는 걸(온 콜, on-call)' 필요로 했습니다. 회사가 지시하면 주말에도 일하고, 한밤중에도 일하고, 당장 오늘이라도 해외 출장 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골딘은 이런 일자리를 '탐욕스러운 일(greedy work)'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직장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대부분 장시간 노동과 온 콜 의무를 받아들여야 하고, 조직은 이런 일을 감당할 사람에게만 높은 임금과 요직을 보장했다는 거죠.

게다가 '탐욕스러운 일'의 기회는 보통 30대 중후반, 자녀가 한창 부모를 필요로 할 때 옵니다. 이때 맞벌이 부부는 가구 소득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부간 불평등을 감내합니다. 대개 남편이 '온 콜' 임무를 맡아 경제적 수입을 극대화하고, 아내가 임금이 낮고 승진도 더디지만 시간 활용이 유연한 일을 맡아 육아를 병행한다는 거죠. 그리고 성 역할 정체성이 강한 나라일수록, 여성이 불평등을 감내하는 경향도 강해 성별 임금 격차가 더 커진다고 결론 내립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인지 통계의 다른 부분을 살펴볼까요.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은 24.5%, 기혼 여성의 가사활동 시간은 기혼 남성의 4.1배에 달합니다. 확실히, 골딘의 주장이 한국에서도 적용되는 거죠.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임금 격차만 볼 때) 한국은 성 역할 정체성이 극단에 있는 나라로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거나, 양질의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거나 양자택일하게 하는 문화권"이라며 "한국의 혼인률, 출생률 하락은 이 문제와 상관 관계가 있다"고 분석합니다. 2030 여성들은 이런 상황이 부당하다고 비판하고, 2030 남성들은 그래서 여성들이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을 거라 이전 세대처럼 격차가 벌어질리 없는데 무슨 피해가 발생했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겁니다.

이 교수는 여성 경력단절 예방책 중 남성 근로자에게 확대 적용할 수 있는 것부터 찾으라고 제안합니다. 논란이 적어 실현 가능성도, 효과도 크기 때문이죠. 예컨대 태아 검진 시간제가 여성 근로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남자는 월차를 내고 아내의 태아검진을 함께 가는데, 이런 문제부터 바꾸라는 말입니다.

이 교수는 "사실 20대 초중반까지 한국 남성들은 일자리가 아니라, 입시와 군대를 통해 가장 많은 경험을 한다. 이들에게 성차별은 이해가 불가능한 영역일뿐더러 오히려 군 복무로 여성보다 자신들이 손해본다는 인식이 강하다. 정치권이 군 경험을 인정하는 방안을 고민해야지 성별 갈라치기로 (이들의 억울함을) 악용해선 안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양성평등목표제... 국가직은 여성 지방직은 남성 혜택

'여성할당제'로 불리는 양성평등채용목표제의 영향은 어떨까요. 이 제도는 공무원을 채용할 때 여성이나 남성 비중이 30%가 안 되면 해당 성의 합격점을 최대 3점까지 낮춰 추가 채용하는 제도입니다. 추가 채용이라 기존 합격자에 대한 불이익은 없죠. 통상 사회복지·보건 분야에서 남성이, 토목·임업·건축 분야에서 여성이 추가 합격했습니다. 행정안전부의 '2020 공공부문 균형인사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9년까지 추가 합격자는 남성 2,109명, 여성 1,665명이었습니다. 국가직은 여성(348명), 지방직은 남성(1,898명)이 더 많은 혜택을 봤죠.

양성평등채용목표제가 적용되지 않는 공무원이 있습니다. 교육공무원, 바로 국공립 초중등학교 교사들입니다. 교육공무원 분야의 양성평등채용목표제는 국공립 대학교에만 적용됩니다.

'경쟁'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초등 임용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이 2015년 64%에서 2016년 65%, 2017년 67%, 2018년 68%, 2019년 69%, 2020년 70%로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90%), 대전(89%), 세종(88%), 부산(80%), 경기(79%), 대구(78%) 등 대도시 여성 초등교원 임용 비율이 월등하게 높죠.

이쯤되니 근로자 성평등이 아니라 소비자 편의, 즉 학생 교육을 위해서라도 '성비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제안이 나옵니다. "초중고교는 학생들의 인성이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교단의 성비 불균형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게 마련돼야 한다. 양성평등채용목표제를 초중등 교원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죠. 한데 2020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저 자료를 내고 저 주장을 한 사람은,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이었습니다.

반대로 남자 근로자가 지나치게 많아 소비자나 기업이 손해보는 경우도 있죠. 미국의 교통안전 전문가 디판 보즈의 2011년 연구를 보면 자동차 충돌 사고에서 안전벨트를 맨 여성 운전자가 심각한 부상을 입을 확률이 같은 조건의 남성에 비해 47% 더 높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당수 자동차 회사가 차량 충돌 시험에 남성 인체 모형만 썼기 때문이죠. 수재들이 모인다는 정보통신(IT)업계가 국내외 할 것 없이 인공지능(AI) 챗봇 출시 때마다 성차별, 혐오 논란으로 곤혹을 치르는 것도 같은 이유일겁니다.

구조적 성차별. 사회 전체 이익을 위해 꼼꼼히 살펴보고 해소할 수 있는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