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탄소중립 이슈가 극대화되면서 뉴스에 여러 차례 등장했던 'IPCC 보고서', 혹시 기억하시나요? 20년 안에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높아질거라 경고하며 기후위기에 대한 경종을 울렸던 바로 그 보고서입니다.
지난달 발간된 6차 평가보고서 실무그룹2 보고서는 80년 내 지구 온도가 2.7도 올라 지구상 생물의 절반 이상이 멸종위기에 처하고, 전 세계 인구 절반인 40억 명이 물 부족에 시달리며, 16억~26억 명이 전염병에 노출될 것이라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처럼 들리는 IPCC 보고서는, 하지만 하루아침에 뚝딱 나오는 게 아닙니다. 195개국 400여 명의 전문가가 참여해서 만듭니다. 그 과정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IPCC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줄임말입니다. 1988년 세계기상기구(WMO)와 국제연합 환경프로그램(UNEP)이 함께 만든 기구죠. 기후변화와 관련된 포괄적 정보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1990년부터 꾸준히 기후변화 평가보고서를 발간해오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각국 정책수립의 기초자료로 쓰입니다.
보고서 작성은 크게 4단계로 나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내용을 담은 실무그룹1 보고서 △그로 인한 영향·적응·취약성 문제를 다루는 실무그룹2 보고서 △기후변화 완화 방안을 논의하는 실무그룹3 보고서 등 3가지 보고서가 우선 작성됩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종합보고서'가 발간됩니다.
지난달 실무그룹2 보고서가 나왔으니, 4월엔 실무그룹3 보고서가, 9월엔 종합보고서가 나올 예정입니다. 내년부터는 7차 종합보고서 작성을 위한 준비에 돌입합니다. 실무그룹 보고서 작성 때마다 수백 개국 협의를 거치다 보니 보통 다음 종합보고서가 발간될 때까지는 5~7년 정도가 걸립니다.
보고서 작성 작업이 시작되고 IPCC에서 초안이 나오면, 우리나라는 기상청을 중심으로 국립기상과학원, 한국환경연구원, 녹색기술센터,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공공기관 전문가들이 모여 전문위원 검토를 시작합니다. 검토 후 답변을 달아 IPCC에 보내면 IPCC는 이를 다시 전세계 각국에 보내 피드백을 받고, 이 피드백과 함께 보고서를 각국에 되돌려줍니다.
이렇게 보고서를 주고받는 과정이 3차례 정도 이뤄지는데, 검토기간은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반 정도입니다. 이 기간 중 마지막 버전은 관계부처 공무원들의 검토의견까지 수렴합니다.
이 기간이 끝나고 나서야 IPCC는 보고서 승인을 위한 총회를 소집합니다. 우리나라는 기상청을 중심으로 관계부처 공무원과 전문가 등 20인 내외로 정부대표단을 구성하여 총회에 대응합니다.
전 세계 195개국 400여 명이 참가하는, 이 거대한 총회는 코로나19 때문에 한층 더 복잡해졌습니다. 예전에야 어디서 열린다 하면 그곳에 다 모여서 논의하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온라인으로 진행합니다. 참가국이 사실상 거의 전 세계 국가 전부이다보니 회의 시간은 각국 시차를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회의 시간을 마냥 잘게 쪼갤 수는 없는 노릇이니 첫 주는 오후 2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 두 번째 주는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진행하는 걸로 정했습니다. 3시간 회의, 2시간 휴식을 반복하며 꼬박 13시간 동안 진행합니다.
여러 차례 의견을 주고받은 내용인데 회의 시간이 뭐 그리 오래 걸리냐고요? 본보고서는 총회 시작과 함께 바로 승인되지만,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되는 '정책결정자를 위한 요약본'에 대해선 만장일치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고서의 모든 내용을 한 줄, 한 줄 읽어가며 동의를 구합니다. 어느 한 국가라도 내용은 물론, 사소한 표현에 대해서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이 문제가 풀릴 때까지 토론을 이어나갑니다. 이번에도 40쪽 짜리 요약본 승인에 2주가 걸렸습니다.
온라인 토론이라 시간이 더 늦어지는 측면도 있습니다. 대면일 때야 출장 일정 때문에라도 무작정 늘어지기 어려운데, 온라인은 시차를 이겨낼 커피만 있다면야 얼마든지 토론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보고서 집필진에 우리 과학자들은 몇 명이나 참가할까요. 이번 6차 보고서에는 19명이 참가했습니다. 예전 4,5명 수준에서 크게 늘어난 겁니다. 당연하게도 집필진은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연구실적, 학계 인지도 등 여러 요인을 감안해 IPCC가 뽑습니다. 집필진에 한국인 과학자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기후변화에 대한 국내 연구가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올해 9월 최종 승인된 6차 종합보고서는 11월 이집트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와 내년부터 COP에서 본격 검토에 들어가는 파리협정 이행점검 등 국제사회 기후변화 논의 근거자료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5~7년간에 걸친 피땀 어린 논의가, 제힘을 발휘하느냐는 이때부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