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항복해 민간인 희생 줄여야”... 일본내 발언 두고 논쟁 잇따라

입력
2022.03.15 17:33
하시모토 전 오사카 지사, 방송인 등 주장

일본 TV나 라디오 방송 등에서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계속 항전해도 승산은 없고 민간인 희생자가 늘어날 뿐이라는 발언에 잇따라 논쟁이 붙고 있다.

14일 방송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TV 프로듀서 출신의 방송인 테리 이토는 통역 일을 하며 일본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 옥사나 피스크노바씨와 언쟁을 벌였다. 테리는 “상황은 우크라이나에 어렵다. 이대로 가면 민간인 사망자가 늘어나는 것이 가장 나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차피 이길 수 없다. 헛된 희생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옥사나씨는 “피란할 사람은 하고 있다. 저항을 하지 말라는 것이냐. 마치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계속하고 싶어서 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항의한 뒤 “우크라이나를 버리면 다음은 폴란드다”라고 꼬집었다.

유명 우익 정치인 출신으로 정계를 은퇴한 하시모토 도오루(橋下徹) 전 오사카부 지사나 TV아사히에 고정출연하는 방송인 다마가와 도오루 역시 일시적으로 러시아에 양보해서라도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과거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의 역사가 있다. 당시 일본은 전쟁을 계속해 봤자 미국에 질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국민에게 결사항전을 부추겼고 많은 민간인이 희생됐다. 하시모토 전 지사는 자신이 전쟁을 공부하기 위해 다양한 현장을 방문했는데 “나가사키 원폭으로 7만4,000명, 히로시마에서 14만 명, 도쿄 대공습에서 11만 명, 오사카 대공습에서 1만 명이 희생됐다”면서 “도망가는 것도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박도 있다. 태평양전쟁은 일본이 미국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시작됐고 미국은 이에 반격하는 쪽이었다. 반면 이번에는 러시아가 침공했다. 이들의 발언은 공격을 받은 쪽이 저항하지 말고 항복하라는 소리가 된다.

일본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 회사원 나자렌코 안드리씨는 최근 방송 등 언론에 잇따라 출연하며 고국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 매체에 출연해 “일본에선 더 이상 희생자를 내지 않기 위해 항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우크라이나가 항복하면 기다리는 건 탄압과 학살”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폴란드로 도망가면 다음엔 폴란드가 침공당할지 모른다”며 “일단 영토를 내주면 우크라이나인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내줄 이유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