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압박의 열쇠를 쥔 중국이 끝내 침묵을 고수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미국이 국제사회를 규합해 러시아 제재를 실천하고 있지만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할 경우 제재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14일(현지시간)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미국은 군사 장비를 포함한 중국의 대(對)러시아 지원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반면 중국은 '러시아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확답 대신 "대만 문제부터 해결하라"며 변죽만 울렸다. 마치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지 않을 경우 중국은 협력하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던진 듯하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이날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국가안보보좌관과 우리는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직접적이고 매우 명확하게 제기했다"며 "어떠한 지원도 중국과 우리와의 관계뿐 아니라 전 세계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크게 두 가지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러시아의 제재 도피처가 돼선 안 된다는 점과 군사 장비 지원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반면 서방 언론을 통한 '무기 요청설'은 점차 구체화하는 양상이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이 러시아에 군사적, 경제적 지원에 나설 의향이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보도하며 "이는 실제 상황이고 정말로 걱정스럽다"는 미 정부 당국자의 반응을 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복수의 당국자를 인용해 러시아가 중국에 요청한 품목에 지대공 미사일, 무인기, 정보 관련 장비, 장갑차, 보급·지원용 차량 등이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CNN은 장기보관이 가능한 전투식량(MRE)도 요청 품목 중 하나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양 정치국원은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중국의 입장을 왜곡하고 비방하는 모든 언행을 단호히 반대한다"며 부인했다.
주목되는 부분은 "잘못된 정보"라고 일축하면서도 "러시아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확답' 또한 내놓지 않고 있는 점이다. 이는 다분히 이번 미중 고위급 회담을 주시하고 있는 러시아의 입장을 고려한 제스처로 풀이된다. 러시아 지원은 없다고 명시적으로 선언할 경우 대미(對美) 전선의 한 축인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이 손상된다는 우려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5일 브리핑에서 미국의 대 중국 제재 가능성에 대해 질문받자 "(미국이) 러시아 측과의 관계를 처리할 때 중국의 정당한 권익을 해치지 말 것을 미국에 요구한다"며 "중국과 러시아 양측은 앞으로 상호 존중과 평등·호혜 정신에 따라 정상적인 무역 협력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오히려 대만 문제에 열을 올렸다. 관영 환구시보에 따르면, 이날 회담에서 양 정치국원은 지난해 11월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힌 점을 언급하며 "하지만 미국의 행동은 말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만 분리주의 세력을 묵인하고 지원하는 모든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미국이 더 나아갈 경우 이는 매우 위험한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문 관영 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전문가들 분석을 인용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중미관계의 기초"라며 "미국이 계속 이중적 태도를 보일 경우 중미관계의 중대한 돌파구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크라이나 사태 속 중국의 책임을 논하기 전에 미중 갈등의 근본 원인인 대만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공세적 방어' 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