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쉼터로 쓰자"…시위대, 러 재벌 데리파스카의 런던 저택 점거

입력
2022.03.15 13:23
"러 재벌이 전쟁 지원했으니 집은 우크라 난민 것"
영국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방안 제안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억만장자 올레크 데리파스카의 영국 런던 저택이 반전 시위대에 점거됐다. 시위대는 대러 제재로 동결 조치된 이 집을 '난민 쉼터'로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14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스스로를 우크라이나 무정부주의자 네스토르 마크노의 이름을 딴 '런던 마크노비스트'라고 밝힌 시위대 4명은 이날 데리파스카 소유의 런던 벨그레이브 광장 5번가 저택을 점거했다. 이들은 저택 발코니에 올라 우크라이나 국기를 "이 재산은 해방됐다", "푸틴 엿먹어라"라고 적힌 깃발과 함께 내걸었다. 데리파스카는 세계 최대 알루미늄 회사 '루살'의 회장으로, 영국이 대러 제재 목적으로 자산 동결·여행 금지 조치한 7명의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 재벌) 중 하나다.

시위대는 데리파스카의 저택을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에 사용해야 한다고 적극 주장했다. 이들은 취재진에게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집은 파괴됐고, 이 남자(데리파스카)는 전쟁을 지원했기 때문에 이 집은 난민들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저택을 점거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사람들과 이 광기에 전혀 동의한 적 없는 러시아 사람들과의 연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저녁 무단침입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러시아 재벌의 재산을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해 이용하자는 방법은 최근 영국 정치권에서도 여러 번 제안됐다. 마이클 고브 영국 주택부 장관은 지난 13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제재를 받는 개인의 주택과 다른 재산을 인도주의적으로 이용할 방안을 생각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영국 총리실 대변인도 이날 시위대의 주장에 대해 "무단 점거는 불법이지만, 우리도 제재 대상의 압수된 재산을 어떻게 적절히 사용할 수 있을지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올리가르히의 재산을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기엔 법적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제재로 재산이 동결됐을 뿐 압류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톰 키팅 국제 안보 전문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 이사는 "이 재산들은 여전히 같은 사람의 소유이기 때문에 팔 수 없다"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푸틴 정권과 관련 있는 사람들의 재산을 모두 몰수하기는 어렵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스테이시 킨 금융 제재 전문 변호사도 "동결된 자산을 바로 팔거나 저당잡긴 어렵다"면서 "다만 제재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