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9월, 모스크바 방공사령부 미사일 방어부대의 조기경보 탐지팀장인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Stanislav Petrov) 공군 중령은 미국 본토에서 5개 이상의 미사일이 발사되었다는 레이다 관측소의 보고를 받았다. 당시는 소련이 대한항공 007편을 격추하고 3주쯤 지난 시점이었다. 미국-소련 간에는 초긴장이 흐르는 상황이었다. KGB 출신 안드로포프 공산당 서기장이 이끄는 크렘린은 미국으로부터 100% 미사일 보복공격을 예상하고 있었고, 이 경우 신속 맞보복하도록 미사일부대에 이미 명령을 내린 상황이었다.
페트로프 중령은 몇 분 안에 방공사령관과 크렘린 상황실로 연결된 전시 비상지휘체계에 보고를 해야 했다. 만약 미국의 미사일 발사로 보고한다면, 그건 곧 제3차 세계대전 발발, 어쩌면 핵전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페트로프 중령은 냉정했다. 미국의 미사일 발사로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했고 컴퓨터 오작동, 즉 잘못된 경보로 보고했다. (실제로 나중에 미국 노스다코타 상공의 소련 위성이 구름에 반사된 햇빛을 미사일로 잘못 읽은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페트로프 중령의 판단이 세계대전을 막았고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한 셈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푸틴 대통령의 핵사용 우려가 커지면서, 워싱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페트로프의 50년 전 이야기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푸틴은 이 전쟁을 쉽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국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푸틴은 매우 당황하고 있다. 러시아 군대는 식량과 연료가 점점 줄어들고, 푸틴의 선택지도 점점 좁혀지고 있다. 푸틴은 침공 개시 전 이미 "누구든지 러시아를 방해하려는 자는 역사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핵 사용 용의로 해석하고 있다.
푸틴은 냉전 해체 이후 서방에 대한 러시아의 분노를 조장하는 데에 수십 년을 보냈다.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에서 광범위한 공격을 받고 있다고 거짓 주장을 해 왔다. 그는 러시아인들이 집단적 정체성에 자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전쟁을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푸틴은 스스로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라고 여기고, 전 세계 러시아인들이 자기를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믿는다. 2014년 크림반도 침략 성공으로 이를 입증했다고 생각한다. 푸틴은 이제 자신을 정치 지도자 수준을 넘어 타락한 서구 문명에 대항해 전통적인 러시아 도덕문명을 지키는 지도자로 여긴다. 푸틴의 정체성 정치는 심한 나르시시즘(narcissism)이기 때문에 통제 불능이고 정상적인 사회에 치명적이다. 자신의 약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상대를 공격하려는 의도가 늘 잠재되어 있다. 푸틴을 연구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를 좋다 혹은 나쁘다로 평가하지 않고, 한마디로 매우 위험한 인물로 규정한다.
워싱턴 전문가들은 소련 시절보다 현재의 러시아가 전쟁 능력이 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핵전쟁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당시 소련은 재래식 전쟁에서 패해도 선택할 지점이 있었지만, 지금 푸틴은 전쟁에서 후퇴할 경우 전술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 말고는 거의 선택지가 없다.
바이든 대통령의 고민이 바로 이 지점이다. 푸틴의 손가락이 핵 단추에 닿기 전 선택지를 남겨 주어야 한다. 과연 어떤 선택지가 있을까. 최악의 상황을 막아낸 50년 전 페트로프의 영웅적 이야기가 다시 살아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