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캠프에 그런 공약이 있다고요? (대선 끝나면) 본인은 기억이나 하려나요."
지난달 말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함께 검증해 보던 한 시민단체 대표의 반응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무고죄 강화'에 묻혀 거의 존재감이 없었던 '성별근로공시제' 얘기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야를 불문하고 성평등 일터를 조성하겠다며 10대 공약 중 하나로 남녀 임금을 외부에 공개하는 '임금공시제'를 들고나왔던 후보들 사이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의 '성별근로공시제'는 상당히 튀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크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성별 임금 격차를 포함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기업 내 임원 비율 등을 토대로 매년 산출하는 '유리천장지수'는 올해도 29개국 중 29위, 10년 연속 '꼴찌'다. 압도적 1위 분야가 31.5%인 임금격차다. 남성이 100만 원을 벌 때 여성은 68만5,000원을 받는다는 뜻이다. 대선 때마다 임금공시제 도입이 공통 공약으로 나오는 배경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임금공시제를 추진했지만 법제화에 실패했다. 여성단체들 사이에선 채용부터 승진과정까지 성별 격차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선 단순히 임금 차이를 드러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 고용형태별, 직군별 성비 등 다양한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이런 와중에 윤 당선인의 성별근로공시제 공약은 이들 요구에 꽤나 부합하는 내용이다. 채용부터 퇴직까지 단계별 성비를 공개한다는 게 골자다. ①채용단계에선 신규·경력직 지원자 서류 합격자부터 최종 합격까지 성비를, ②근로단계에선 부서별 근로자와 승진자, 육아휴직 사용자 성비를, ③퇴직단계에선 해고자, 조기퇴직자, 정년은퇴자 성비를 공시하겠다고 했다.
의아해하던 시민단체 대표는 "더 강력한 공시제를 하겠다는 건데… 취지를 이해하고 있는 걸까"라고 중얼거렸다. 일부 남성 이용자가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도 혼란스러웠다. "이해가 안 간다" "철회했으면 좋겠다" "2030 남성표는 이미 확보했다고 보는 건가" "이거 제안한 정책관 잘라라"라는 글들이 올라왔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던 윤 당선인의 생각과 성별 격차 구조를 드러내는 게 목적인 제도 도입이 모순된 탓일 테다.
벌써부터 성별근로공시제는 흐지부지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공시 이후 문제 개선 방식을 담은 후속대책이랄 게 아직 없는 데다, 500인 이상 기업부터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 뒤 순차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강제성 없는 계획이어서 실효나 실현 가능성에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공약 이행률은 40% 안팎이다. 윤 당선인의 여가부 폐지를 꼭 지키겠다는 입장은 거의 매일 재확인되고 있다. 여가부는 상장기업 사업보고서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을 일일이 전수조사해 성별 임금 격차를 제한적으로나마 공개해 왔던 부처다. 고용형태와 직급별 격차 정보 공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부처기도 하다. 성별근로공시제 소관 부처가 어디가 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여가부보다 더 효과적인 정부 조직을 구성하겠다"는 당선인의 말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