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전역에서 벙커와 방사능 물질 아이오딘(요오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비교적 평범한 사람들이 그간 억만장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벙커를 구매하고, 아이오딘 알약은 이미 동이 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핵 카드를 언급해 유럽인들 대다수가 방사능 피폭 두려움에 빠진 탓이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핵전쟁 두려움을 느낀 유럽인들이 벙커와 아이오딘 알약 구매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27일 푸틴이 러시아 핵운용 부대 등에 “특별 전투 의무 체제에 돌입하라”고 지시한 데다,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과 자포리자 원전도 러시아군 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벙커는 그간 최상위 부유층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최근 일반인들 사이에서 수요가 두드러지게 늘고 있다. 프랑스의 벙커 업체 대표 마티외 세란느는 NYT에 “예전엔 정말 부유한 사람들만 관심이 있었지만, 전쟁 시작 이후 비교적 평범한 사람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며 “기존보다 저렴한 14만 달러(1억7,300만 원) 수준의 벙커를 선보이는 등 판매 전략을 바꿨다”고 말했다. 22년간 이탈리아에서 지하 벙커 사업을 운영한 줄리오 카비키올리는 “그간 50개의 벙커를 판매했지만, 지난 2주간 구매 문의만 500건이 넘었다”며 “사람들이 핵 공포에 빠져서 벙커를 구매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체내 방사성 아이오딘 축적을 예방할 수 있는 아이오딘 알약 확보에 나섰다. 방사능을 포함하지 않은 아이오딘을 미리 복용하면, 핵 폭발 시 발생하는 방사성 아이오딘이 갑상샘에 흡수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핀란드에선 우크라이나 침공 후 아이오딘 수요가 100배가량 증가했으며, 벨기에에선 7일 하루에만 아이오딘 3만 박스가 팔렸다. 가격 역시 상승했다. 아마존 기준 연초에는 30달러였던 가격이 지난주엔 70달러까지 치솟았고, 현재는 대부분 품절됐다.
공포에 빠져 실질적으로 효능이 없는 비타민을 구매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로마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스테파노 프란체스키니는 “사람들이 핵 폭발이 일어났을 때 무엇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소량의 아이오딘이 포함된 비타민을 구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탈리아에선 처방전이 있어야만 아이오딘을 구매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알고 발걸음을 돌리거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비타민을 구매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