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인재들이 나라를 떠나고 있다. 정보기술(IT) 전문가, 인문학자 등 분야도 다양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데다,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겐 재갈을 물린 탓이다. 이들은 ‘탈 러시아’를 통해 푸틴 대통령이 통치하는 러시아의 기술과 지식을 약화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다만 인접국에선 “러시아에 남아 푸틴에게 맞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은 “러시아의 엘리트들이 다른 국가로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경제학자 콘스탄틴 소닌의 추산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전쟁이 시작된 후 러시아인 20만 명가량이 자국을 떠났다. 친 러시아 국가인 벨라루스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들이 고국을 등지는 건 전쟁 이후 심화된 푸틴 대통령의 권위주의 정책 때문이다. 러시아에선 평화로운 반전 시위도 할 수 없고,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사람에겐 최대 20년의 징역에 처하는 새 법안도 시행됐다. 언론 탄압도 심각해 국영 언론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매체들이 문을 닫아야 했다. 정치학을 전공한 예브게니 랴민은 “반전 시위에 참가했는데,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노란색과 파란색 리본을 달고 있어 체포됐었다”라며 “그 이후 나라를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BBC에 밝혔다.
러시아를 떠난 이들은 자신들의 이민으로 러시아의 지식 기반을 약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비디오게임 개발자는 “반 푸틴 시위가 폭력적으로 진압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러시아를 탈출하는 일”이라며 “그래야 우리가 가진 기술을 푸틴을 위해 쓰지 않게 되기 때문”이라고 BBC에 설명했다. 블룸버그통신도 “2차대전 후 동유럽의 인재들이 공산화를 피해 서구 국가로 향했던 것과 비슷한 일이 러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결국 푸틴이 곤경에 빠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주변국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일부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은 러시아인과 벨라루스인의 숙박을 거부하고 있다. 한 호스트는 “벨라루스인 부부에게 ‘당신들은 휴가를 보낼 때가 아니다. 나라로 돌아가서 부패한 정부에 대항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특히 인접국인 조지아는 2008년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기억이 생생해 반감이 더 큰 상황이다. 벨라루스 출신 IT 전문가인 크리스티나는 “조지아로 왔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며 “이곳에서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선 국적을 숨겨야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