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 민주화, 양심수 석방은 너무 오랜 얘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불과 50년 전만 해도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자유를 요구하는 것이 수감의 이유였다. 기본적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던 50년 전 1972년 3월 28일, 한국의 민주화 인사 약 20명이 모여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첫 창립회의를 열었다.
이후 한국지부는 자신의 사상과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갇힌 양심수의 석방, 사형과 고문 반대, 국가보안법 폐지 등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 권력에 맞서는 활동을 펼쳐왔다. 이 과정에서 지부장과 이사진이 수감되었고, 국제앰네스티 회원들은 구금된 민주화 인사들의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시민사회의 발전과 함께 한국지부는 일본군 성노예인 '위안부' 생존자의 정의회복 운동, 시위대를 향한 과도한 경찰력 사용의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등으로 인권 활동의 범위를 넓혔다. 2018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의 인정과 2020년 '낙태죄' 폐지 결정 등 역사적인 인권 승리를 함께하며 인권 운동이 멈추지 않는 한 사회는 진전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인권의 도전을 맞닥뜨리고 있다. 전례 없는 규모의 인권 위기인 기후위기는 전 세계의 불평등과 차별을 심화시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세상을 더욱 불확실하고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 커지는 빈부격차, 차별과 증오를 부추기는 지도자와 선동가들의 행태는 우리가 직면한 인권의 도전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과거를 기억 못 하는 이들은 반복하기 마련"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아울러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나온 발자국을 기억하는 용기가 필요함을 다시금 되새긴다. 지난 50년을 돌아보니 한국의 인권은 실제로 변화해왔고, 지금도 나아가고 있다.
새롭고도 강력하게 부상하는 인권 위기에 맞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바로 '모두가 인권을 누리는 세상'이다. 그 누구의 생명과 안전도 배제하지 않고 평등과 비차별의 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용기를 갖고 목소리를 내야만 가능하다.
국제앰네스티는 2030년까지 평등과 비차별 옹호, 표현과 집회시위 자유를 우선순위로 활동한다. 특히 젠더 기반 폭력과 증오 범죄, 기후위기로 인한 불평등 문제에 맞서 싸우는 것은 한국사회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용감한 인권 옹호자 시민들과 함께 손잡고 강력한 인권 위협과 과제들을 뛰어넘는 10년, 50년 후의 대한민국을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