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은 웃지 못했다... '갈라치기 정치'에 옐로 카드

입력
2022.03.1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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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에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활짝 웃을 수 없었다. 그가 밀어붙였던 주요 대선 전략이 모두 초라한 성적표를 받으면서다.

이 대표가 20대 남성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반(反)페미니즘을 내세워 '젠더 갈라치기'를 부추긴 게 독이 됐다. 9일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 출구조사 결과 20~50대 여성들은 합심해 국민의힘 심판에 나섰다. '이준석표 분열과 혐오의 정치'에 대한 옐로카드를 던진 것이다. 한때 윤 당선인 지지율 반등을 이끌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0.73%포인트' 격차의 신승이었다. 이 대표의 전략으로 대선 압승을 기대했던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여성은 투표 안 한다" 이준석의 오판

이 대표는 지난해 7월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라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제대로 냈으면 좋겠다"며 '여성 배제'를 대선 전략으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페미니즘 성향이 강한 일부 20대 남성(이남자) 지지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윤 당선인이 올해 1월 캠프 인선 등을 두고 갈등했던 이 대표와 화해하자, 가장 먼저 내세운 공약이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범죄 무고죄 강화'였다. 이 대표의 20대 남성에 경도된 발언은 이어졌다. 1월 14일 "성 중립적 공약을 내야 남성 지지층에서 강한 반등이 일어난다"고 주장했고, 윤 후보와 국민의힘이 언론사와 시민단체가 질의한 성평등 공약에 답변을 거부한 것을 과시하기도 했다.

선거 막판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최대 부동층인 2030세대 여성 표심을 얻기 위해 올인했을 때에도, 이 대표는 지난 7일 "여성들의 투표 의향이 남성보다 떨어진다. 온라인에서만 보이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정작 9일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의 뚜껑을 열어보니, 60대 이상 장년층을 제외한 전 연령대의 여성에게서 이 후보 쏠림 현상이 확연히 나타났다. 특히 20대 여성 58%가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에 등을 돌렸다. 2030세대와 60대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대선을 승리하겠다던 이 대표의 '세대포위론'은 사실상 실패했다.


빛바랜 호남 공략… 텃밭 노원도 졌다

이 대표가 공을 들였던 호남 득표율도 기대에 못 미쳤다. 최대 30%까지 득표를 자신했지만, 윤 당선인의 득표율은 광주 12.72%, 전남 11.44%, 전북 14.42%에 그쳤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민의힘 텃밭인 부산과 경남에서 이 전 후보가 각각 38.15%, 37.38%를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마이너스 전략'에 그쳤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재선 의원은 "윤 당선인이 국정 운영에 힘을 받으려면 압도적 승리가 필요했는데, 이 대표의 전략이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에서도 윤 당선인의 득표율(47.22%)은 이 전 후보(48.94%)에게 미치지 못했다.


윤석열에 도움 안 된 '이준석 비단주머니'… 부글부글

압승을 예상했던 국민의힘에선 이 대표 책임론도 불거졌다. 정태근 전 의원은 "남녀를 불문하고 정권교체 요구가 높았는데 2030세대 남성만 겨냥한 캠페인이 오히려 반작용을 가져왔다"고 직격했다. 김재원 최고위원도 "젊은 여성들에게 좀 더 소프트하게 접근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닮은 이준석식 '혐오 정치'에 대한 우려도 작지 않다. 여성들이 계속 등을 돌리면, 여소야대 국면에서 윤 당선인의 국정운영 동력에 힘이 실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국민의힘의 여성 의원은 "지역에 가면 국민의힘을 지지하고 싶지만 이 대표의 SNS를 보면 차마 못 찍겠다는 고민을 털어놓는 여성 청년들이 많다"고 우려했다.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 "2020년 총선과 비교하면 전 연령·성별에서 수치가 개선됐다"고 강조했다. '젠더 갈라치기' 전략이 오히려 리스크 요인이었다는 평가를 부인한 셈이다. 그는 "호남에서 역대 보수 후보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며 '호남 공략'을 이어갈 뜻을 밝혔다.

김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