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유지가 기초의회 독점… 후진적 구조 바꿔야 신뢰 회복"

입력
2022.03.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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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초의원 무용론과 냉소 넘어서려면
현직 의원·예비 후보·유권자 8명 한 자리 모여
예산안 심사·조례 제정 등 기초의회 역할 막중
제대로 일하면 겸직은커녕 '하루 3시간 수면' 
지역 유지 아닌 이상 현 월급으로 생활 어려워
"급여 체계·공천 시스템 개편하고 다원화해야"

동네 일꾼을 주민 손으로 직접 선출하는 기초의회 제도가 1991년 부활했지만 출범 이후 줄곧 '무용론'이 제기됐다. 수천억 원대 지자체 예산을 심의·의결하고, 시민 삶과 직결되는 조례도 만들었지만, 기초의회 역할에 대한 유권자의 부정적 인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여기에 '투잡' '쓰리잡' 등 겸직 논란과 이해충돌 문제는 전국 시군구 기초의원들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웠다.

한국일보와 정치플랫폼 섀도우캐비닛은 기초의회가 직면한 현실과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현직 기초의원 3명과 출마를 준비 중인 예비후보 2명, 그리고 지역 정치 발전에 관심이 많은 유권자 3명을 최근 한자리에 모았다.

기초의회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었지만 "유권자 모습을 닮은 기초의원이 더 필요하다"는 점과 "지역 유력자의 의회 독점을 막기 위한 환경 조성이 절실하다"는 점에선 의견이 일치했다.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가 좌담회 진행을 맡았다.

-성실하게 일하는 기초의원들은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데, 정작 시민들은 “기초의원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 기초의원은 주민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건가.

서상혁 서울 중랑구의원(국민의힘)=기초지자체의 모든 예산안 심사권과 의결권이 기초의회에 있다. 중랑구의 올해 예산은 9,000억 원 이상이고 추경까지 더하면 1조 원이 넘어간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구의원이 독려하지 않으면 공무원들을 움직일 수 없다. 현재 복지건설위원회 소속인데, 면목동은 주거환경에 대해 신경 쓸 일이 많다. 어린이 보호구역을 확대하려면 경찰과 협조가 필요하다. 이런 일들을 성사시켜야 보람을 느낀다.

김희서 서울 구로구의원(정의당)=조례 제정도 중요하다. 단순히 지역 정책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정책까지 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로구의회에서 의원 발의를 거쳐 여성 청소년 생리대 지급을 최초로 시작했다. 해당 조례를 여주시의회가 참고했고 경기도의회도 받았다. 이슈와 가장 밀접한 현장에서 전국적인 의제를 만들 수 있는 곳이 기초의회다.

황선화 서울 성동구의원(더불어민주당)=주민들은 체감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정말 바쁘게 움직인다. 주민들 의견을 수렴하고 상임위 참석에 필요한 자료를 만드느라 하루 3시간밖에 못 자는 날도 많다.


-기초의원들의 노동 강도가 꽤 높은 것 같은데, 예비 후보들은 왜 출마를 결심했나.

박제민 녹색당 예비후보=이 자리에 있는 현직 기초의원 세 분이 소수파이자 개혁파라고 생각한다. 지역에서 본 정치인들은 정당 색깔과 상관없이 그저 기득권을 지키는 정치를 한다. 그러다 보니 '나를 대표해 줄 수 있는 지역 정치인이 많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컸다.

봉한나 민주당 예비후보=행정에 필요한 예산 운영에 참여하고 싶었다. 한 달에 200만 원도 못 벌고, 4평 원룸에 살며 신음하는 청년들이 많지 않나. 그들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하고 싶다.

-시민들은 기초의원의 의정활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구은경 시민 토론자(여성이만드는일과미래 상임이사)=행정 감시와 조례 제정 이외에도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그중 상당 부분은 동호회나 지역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다. 그런데 늘 거기서 논란의 소지가 생긴다. 결국 기초의원을 견제하는 그룹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해야 무용론이 가라앉을 것으로 본다. 일관된 평가 기준이 있어야 정말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할 것 같다.

김기준 시민 토론자(남양주 조안면 주민통합협의회장)=제가 거주하는 남양주시는 기초의회 무용론이 거세다. 근본 원인은 정당 공천 제도라고 본다. 당원이나 시민이 아닌 지역위원장이 기초의원 후보 자격을 검증한다. 지역구 국회의원 입김이 센 것도 문제다. 국회의원과 지자체장 사이가 나쁘면 시의원도 같이 싸우기 때문에 행정 마비로 이어진 적도 있다. 국회의원이 바쁘면 기초의원을 지역 행사에 대신 보내기도 한다.

-기초의원 무용론과 더불어 제기되는 문제가 이해충돌 소지를 내포한 겸직 문제다. 기초의원 급여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서상혁=지자체의 재정 자립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저는 실수령액이 매달 330만 원 정도다. 330만 원에 포함되는 의정활동비는 전국 동일하게 110만 원이다.

구은경=급여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시민들은 의원들 상당수가 겸직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그 돈이 아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제대로 일하는 젊은 의원들은 너무 바빠서 겸직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의정활동에 매진할수록 더 적은 돈으로 생활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하기도 한다.

황선화=서울 이외 기초의회에선 급여가 월 200만 원대인 곳도 있다.

김기준=아무리 생각해도 현재 기초의원 급여만으로 생활은 어려운 것 같다. 어떤 시의회 의장은 경조사가 너무 많아서 4년간 빚이 2,000만 원이나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방으로 갈수록 돈 많은 유지들이 주로 기초의원을 한다. 대도시에선 자영업을 크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

황선화=겸직을 반대한다. 겸직하는 의원들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겸직을 허용하지 않는 대신 급여를 올리고, 기초의원도 비정규직 노동자인 만큼 선거에서 떨어지면 실업 급여도 받아야 한다. 의원 생활에 안정성이 생겨야 청년 기초의원이 더 많이 나올 수 있지 않겠나.

김희서=기초의원 대다수가 50대 후반 남성이다. 인생에서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시기로, 기업에선 (임금피크제 등으로) 연봉이 꺾이기 직전이다. 의회 일에만 집중하기엔 급여가 너무 적다. 그러나 청년들에겐 이 금액이 결코 적지 않다. 결국 기초의원들이 젊어지면 겸직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것으로 본다.


-겸직을 제한하고 급여를 올리면 기초의원들이 청렴해지는 건가. '돈 받는 겸직'이 문제가 되다 보니 기초의원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희서=무보수 명예직으로 전환하면 집이 몇 채씩 있는 지역 유지들만 그 자리를 차지한다. 서민들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천억 원대 지역 예산을 다루는 건 불행한 일이다. 기초의원들 구성을 더욱 다양화해 주민들과 최대한 닮은 모습으로 만드는 게 우선적으로 할 일이다.

김기준=겸직을 허용한다 안 한다의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의원 개개인의 자질이나 청렴도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본인이 겸직하지 않더라도, 주변인이 운영하는 업체에 관공서 일감을 몰아주는 경우도 있더라.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박제민=무보수 명예직 전환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만 들어와서 자원을 배분하게 된다. 지금도 제대로 일하는 기초의원들을 보면 겸직할 시간조차 없다. 일 잘하는 기초의원들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급여 체계부터 공천 시스템까지 개혁할 필요가 있다.

봉한나=기업에선 본업을 잘하고 시간이 남는 사람이 겸직을 한다. 이치에도 맞다. 그런데 기초의회는 정반대다. 의정 활동을 못하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시간을 외부 활동에 쏟는다. 기초의원이라면 응당 이 정도는 일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한눈팔지 않는다.

-기초의회에 대한 시민들 신뢰는 어떻게 키워야 할까.

김희원 시민 토론자(섀도우캐비닛 대표)=투명성부터 높여야 한다. 겸직으로 인한 이해충돌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겸직하는 의원이 의회에선 어떤 의사결정을 하는지 감시해야 한다. 의원 본인의 의정활동이 적나라하게 공개된다고 생각하면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을까.

김희서=현직 의원 입장에서 보면, 무엇보다 시민들 참여와 감시가 중요하다. 사실 기초의회 홈페이지에 업무추진비 사용내역과 회의 속기록 등 굉장히 많은 정보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걸 들여다보고 개선하려는 주민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기초의원들이 주민들 눈치를 보게 하려면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그래야 지역에서 인정받은 사람들이 기초의원이 되고, 나중에 국회의원도 된다. 시민들로부터 제대로 자질을 검증받는 시작점이 기초의회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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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기자
윤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