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러시아산 원유ㆍ가스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국제 에너지 시장이 요동치자 세계 각국이 공급 안정화에 분주하다. 미국은 석유 증산을 독려하고, 유럽은 재생에너지에 올인하면서 공급 충격에 따른 물가 상승 압박을 완화하려 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에너지 절감' 방식으로 고통을 분담하자는 제안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대 러시아 에너지 제재를 가속화하는 동시에 원유 물량을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탐색하고 있다. 우선 자국 에너지 산업을 향해 증산을 요청했다.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장관은 9일(현지시간)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에너지 콘퍼런스 '세라위크'에 참석해 "위기의 이 순간에 더 많은 공급이 필요하다"며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석유와 가스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자국 내 셰일 가스를 채굴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도 신규 채굴 허가를 간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서두르던 바이든 행정부가 단기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정책 기조에 역행하는 선택을 한 셈이다.
바이든 정부는 다른 산유국에도 원유 증산을 요청, 호응도 얻어냈다. 이날 아랍에미리트(UAE)의 유세프 알오타이바 주미 대사는 "우리는 생산량 증가를 선호하며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증산 검토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국제유가는 이날 12.5% 급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라크 등 여타 중동 국가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UAE조차 "우리는 OPEC 플러스(OPEC 회원국과 비OPEC 산유국들의 협의체)의 합의를 준수할 것"이라고 입장을 정리하면서 10일 유가는 다시 미세하게 반등했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조만간 직접 사우디로 향해 증산을 설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유럽연합(EU)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정상들은 10일부터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에너지 자원을 축소하고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성 개선 부문에 투자한다'는 EU 집행위원회의 대책안을 승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EU 집행위원회는 "계획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러시아로부터의 가스 수입을 3분의 2까지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들은 일상 생활에 미칠 유가 충격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 사용 절감에 나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말부터 "푸틴과 싸워라, 자전거를 타라", "차를 타는 것은 푸틴을 태우는 것" 등 석탄 에너지 사용을 줄이자는 밈(인터넷 유행)이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원유 소비를 줄이기 위해 통근 재개를 중단하고 재택 근무를 늘리자"는 칼럼을 냈다.
각국 정치권도 이미 에너지 절감을 독려하고 있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장관은 지난 7일 "개개인 모두 에너지 사용을 줄여 완전한 '에너지 독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독려했고,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장관도 5일 "푸틴을 조금이라도 상처 입히고 싶다면 에너지를 아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