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나 진보에 붙박이지 않은 중도층은 역대 모든 선거에서 승부를 결정했다. 이번 대선에서 중도층의 위력은 더 커졌다. 판세가 초박빙인 데다, 표심을 정하지 못한 중도층의 비율이 유난히 높기 때문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대선 포기는 중도층의 마음을 더욱 흔들어 놓았다.
진보와 보수는 이미 똘똘 뭉쳤다.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자. 스스로 진보 성향이라고 인식하는 유권자 사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지지율은 후보 선출 직후인 지난해 11월 1주 56%에 머물렀다. 공표 가능한 마지막 조사(올해 3월 1주)에선 71%까지 상승했다. 보수 유권자의 윤 후보 지지율 역시 마지막 조사에서 67%를 기록했다. 윤 후보의 지지율은 당 내분 등 악재를 만나 49%까지 떨어진 적이 있지만, 선거가 임박하자 결국 결집했다.
중도 유권자의 표심은 여전히 방황 중이다. 대선이 4자 대결 구도로 확정된 지난해 11월 4주 중도층 사이에서 이 후보와 윤 후보 지지율은 33%로 같았다. 이후 중도층 표심은 이 후보와 윤 후보 중 한쪽으로 쏠렸다가 다시 이동하길 반복했다. 3월 1주 마지막 조사에선 다시 한번 이 후보 36%, 윤 후보 36%로 동률을 기록했다.
이 후보와 윤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는 배경에 중도층 민심이 있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4자 구도 형성 이후 한국갤럽 조사에서 두 후보의 전체 지지율은 세 차례 오차범위(±3.1%포인트) 밖으로 벌어졌는데, 매번 중도층이 좌우했다.
지난해 11월 3주 윤 후보가 대선후보 선출 컨벤션 효과로 이 후보를 11%포인트 앞섰을 때 중도층의 윤 후보 지지율은 38%였다. 이 후보는 31%였다.
윤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의 허위이력 논란이 정국을 달군 올해 1월 1주에는 이 후보가 윤 후보를 10%포인트 앞질렀다. 역시 윤 후보의 중도층 지지율이 두 달 사이 14%포인트(38%→24%) 떨어진 영향이 컸다. 2월 3주 윤 후보가 이 후보를 7%포인트 차로 제쳤을 때는 중도층에서도 윤 후보가 7%포인트 차이로 우위였다.
중도층 표심을 가늠할 마지막 중대 변수는 '안철수'다. 안 대표는 3월 1주 마지막 조사에서 중도층 지지율 14%를 얻었다. 이후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돼 안 대표 지지층 향배를 알기 어려워졌다.
올해 1월 안 대표가 상승세를 타던 때로 돌아가 보자. 한국갤럽 조사에서 안 대표의 중도층 지지율은 12월 2주(7%)에서 1월 1주(22%)까지 15%포인트 상승했는데, 이 기간 이 후보(-4%포인트), 윤 후보(-3%포인트),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2%포인트) 등 다른 후보들의 중도층 지지율이 전부 빠졌다. 안 대표의 중도 지지층이 특정 후보에게서 집중적으로 이탈한 게 아니란 뜻이다.
'역대급 비호감'이라는 이번 대선의 특성이 중도층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관심사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도층 입장에선 이 후보나 윤 후보가 좋아서 표를 던지지 않을 텐데, 사전투표를 보면 투표율이 높게 나타난다"며 "국정 역량을 중요시하는 중도층은 이 후보에게, 정권 교체를 바라는 중도층은 윤 후보에게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한국갤럽이나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