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하켄크로이츠 연상돼 소름"...러시아 뒤덮은 'Z'

입력
2022.03.08 15:50
전장부터 러시아 도심까지 접수한 'Z'
'승리를 위해', '서쪽' 등 다양한 해석 나와
정부가 제작·선전하는 밈이라는 분석도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연상시킨다" 비판

알파벳 대문자 'Z'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지지의 상징으로 떠오르면서 'Z'의 정확한 의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해석은 분분한데 러시아에서는 ‘승리’로, 서방에는 독일 나치 시대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로 각각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을 종합하면, 'Z'가 눈에 띄기 시작한 건 몇 주 전 우크라이나로 출병한 수천 대의 러시아 탱크와 군용 차량의 옆면에서 발견되면서부터다. 당시 군사 전문가들은 전장에서 우크라이나 군사 장비와 분간하기 위해 붙인 표식이라고 예상했다.

침공이 전면화된 뒤엔 'Z' 표시는 러시아 내부에서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도심 광고판과 포스터부터 차량 범퍼, TV 토크쇼에까지 등장했다. 러시아 정부 기관 건물은 밖에서 볼 때 Z 모양으로 보이도록 밤에 불을 밝히기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몇몇 대도시의 대형 광고판에는 'Z'와 러시아 군대를 의미하는 주황색 '세인트 조지 리본'을 합성한 그림도 게시됐다.

'Z'의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러시아어로 '승리를 위해'를 의미하는 'Za pobedy'나 우크라이나가 위치한 방향인 '서쪽(Zapad)'을 뜻한다는 추정이 다수 나왔다. 이반 제르나코프 러시아 아르칸젤스크 지역 애국 교육부장은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Z는 통합의 상징"이라며 "우리의 군대와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의미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Z’를 ‘승리’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내 'Z'의 유행은 정부 선전의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Z'가 러시아 국영TV 채널부터 정부 기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까지 공식 채널을 통해 홍보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어로 'za'는 '~을 위하여'를 뜻하는데, 러시아 국방부는 이를 활용해 '평화를 위하여', '군인들을 위하여' 등 다양한 어구를 만들어 인스타그램 등에 게시하고 있다. 정부가 만들고 퍼뜨리는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이미지나 영상)인 셈이다.

그러나 러시아 밖에서 'Z'는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에 비견된다. 앞서 6일 러시아 체조선수 이반 쿨리아크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2 FIG 기계체조 월드컵 시리즈 메달 수여식에서 ‘Z’ 표식이 달린 유니폼을 입어 논란이 일었다. 금지된 러시아 국기 대신이었다. 국제체조연맹(FIG)은 “충격적인 행동”이라며 경악했다.


지난 2일에는 한 러시아 기업이 수백 명의 임직원이 등장해 '푸틴 지지'를 외치는 홍보 영상을 공개했고, 여기엔 불꽃과 함께 'Z'가 나타나는 장면이 나왔다. 이어 영상 속 직원들은 '대통령-푸틴 팀'(Mr. President-Putin Team)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검정 티셔츠를 입고 줄을 맞춰 서서 구호를 외쳤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이걸 보면 나치가 떠오른다"며 "역사가 재현되는 것 같아 소름 끼친다"는 반응을 보였다. 올렉시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은 7일 SNS에 ‘Z’로 만든 하켄크로이츠 모양의 로고 사진을 게시하면서 “나치 표시가 있는 점령자”라고 비판했다.

장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