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임기말 '北 규탄' 선회.... '러시아' 이중고로 출구전략은 '깜깜'

입력
2022.03.08 22:00
유엔 안보리 공동성명 2번 연속 동참
'마이웨이' 북한에 압박 병행 택했지만
러 비협조 등 난관 쌓여, 카드도 소진

5년 가까이 북한의 ‘무력 도발’에 신중한 태도를 고수하던 문재인 정부가 임기 종료를 앞두고 압박 기조로 급선회하고 있다. 특히 최근 두 차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계기 장외성명에 동참한 것이 눈에 띈다. 다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한층 복잡해진 국제정세를 감안할 때 정부의 입장 변경만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안보리는 7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비공개로 앞서 5일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 추정 발사체를 시험발사한 북한 문제를 논의했다. 이번에도 언론성명 채택에는 실패해 한국, 미국 등 11개국 주유엔 대사들이 장외로 입장을 냈다. 이들은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쏠 때마다 안보리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은 안보리 자체의 신뢰성을 해치고 국제 비확산 체제를 약화시킨다”며 규탄 공조를 촉구했다. 올 들어 5번이나 열린 북한 미사일 관련 논의에서 매번 반대표를 던지며 공동대응을 가로막은, 중국과 러시아를 사실상 비난한 것이다.

주목할 건 우리 정부의 움직임이다. 한국은 안보리 이사국은 아니지만 지난달 28일 북한 규탄 공동성명에 처음 참여한 데 이어 이번에도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정부에서 안보리의 북한 규탄 공동성명에 참여한 전례가 없고, 2018년 이후로는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명목으로 규탄에 한층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온 점을 감안하면 큰 변화다. 그간 정부 안에서 ‘대화ㆍ압박 양쪽 메시지를 모두 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던 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으로 권위주의 국가들을 향한 국제여론이 매우 나빠진 점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과 러시아를 뒷배 삼아 ‘마이웨이’로 일관하는 북한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와 핵실험 재개 등 ‘모라토리엄(유예)’ 파기까지 시사하며 한반도 위기지수를 끌어올렸으나, 정부가 규탄 말고는 김정은 정권을 압박할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두 달 뒤면 새 정부가 출범하는 데다, 우크라이나 전황 악화로 국제 외교무대에서 북한 이슈는 더욱 뒷전으로 쳐졌다. 여기에 러시아가 7일 한국과 미국 등 대러 제재에 동참한 48개 나라를 비우호국가로 지정하면서 한러관계 변수까지 등장했다. 외교부는 “경제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며 필요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대응 방침을 밝혔지만, 앞으로 경제는 물론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도 러시아의 거센 방해가 예상된다.

유일한 해법인 대화 역시 막혀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난달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계기로 정부가 미국 측에 제안한 대북 관여 방안들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정신 없는 터라 당분간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현 정부에서 쓸 수 있는 대북 카드는 거의 소진됐다”며 “차기 정부가 새판을 짜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정준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