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는 봄인데 창 밖은 여전히 겨울, 3월 초·중순은 마음과 실제 풍경 사이의 간극이 가장 큰 시기다. 봄맞이 조바심이 커지는 일종의 ‘계절지체’가 빚어진다. 그럼에도 남도에서 시작되는 꽃 소식은 서서히 북상해 어느 순간 전국을 화사하게 물들일 것이다. 지난 3일 순천 탐매마을을 찾았다. 언제 오나 했는데 이 마을의 봄은 이미 한창이었다.
순천에서 매화가 가장 먼저 피는 곳은 순천만 바닷가가 아니라 원도심 매곡동이다. 시작은 조선 중기의 유생 배숙까지 거슬러올라간다. 명종 원년 사마시에 합격한 그는 1564년 이황의 추천으로 승평교수로 부임하며 순천 동쪽에 터를 잡았다. 향교에서 유생을 가르치는 일종의 공립 교사다.
매화를 좋아한 그는 ‘매곡초당’을 짓고 뜰에 매화나무를 심었다. 이른 봄에는 매화나무에 내리는 비(早春梅雨), 한여름에는 솔가지에 부는 바람(盛夏松風), 초가을에는 오동나무를 비추는 달(新秋梧月), 한겨울에는 대나무에 내린 눈(隆冬竹雪)을 즐겼다(매곡집). 매곡동은 바로 그의 호에서 유래한다. ‘매화골’이라는 뜻이다.
배숙의 매곡초당도 그가 심었다는 매화나무도 흔적을 찾을 길이 없건만, 매곡동은 매화 핀 경치를 찾아 구경하는 곳, 탐매(探梅)마을로 변신했다. 언덕 위 ‘교수님댁’ 뜰에 핀 홍매화 두 그루가 단초가 됐다. 순천대(산림자원 전공)에 재직하다 지난해 퇴임한 김준선 교수는 할아버지 때 지어 3대째 살고 있는 집에 ‘홍매가헌(紅梅佳軒)’이란 현판을 내걸었다. 지붕보다 높게 자란 이 집 홍매화는 1월 15일쯤 피기 시작해 2월 초순이면 만개한다.
“집은 미국에서 신학 공부를 마친 할아버지가 목사 안수를 받고 1930년 무렵 선교사들과 함께 들어와 지었으니 얼추 100년 가까이 돼 갑니다. 그때 홍매화와 백매화 각 한 그루를 심었는데 백매화는 1970년 초 태풍으로 넘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홍매화도 자연사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구해서 심은 홍매화 두 그루가 지금 이 나무죠. 당시에 이미 20~30년생이었고, 이 집에 뿌리내린 것만 50년입니다.” 매화의 실제 수령은 70~80년 된 셈이다.
해마다 엄동설한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김 교수 집 매화는 동네 주민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마침내 2007년부터 주민자치위원회에서 공터와 길가에 홍매화를 심기 시작해 ‘탐매마을’로 가꾸고 있다. 이렇게 심은 매화가 3,000그루에 달한다니 동네는 해를 더할수록 화사한 꽃 대궐이 될 전망이다.
길가에 심은 홍매화는 아직 수령이 어려 꽃이 풍성하지 못하다. 그래도 마을 길을 거닐면 곳곳에 진홍빛 향기가 은은하다. 봄 소식은 색과 향뿐만 아니라 소리로도 전해진다. 매화꽃 그늘마다 잉잉거리는 벌들의 날갯짓 소리가 요란하다. 이달 20일께까지는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꽃이 피고부터 두어 달은 갑니다. 경험으로 보자면 3월 15일쯤 꽃비가 내려 바닥에 다시 한번 꽃이 피죠. (바로 아래) 마을의 매화는 그때 만개할 겁니다.” 배숙은 봄비에 떨어지고 흩날리는 매화 꽃송이를 ‘매우(梅雨)’라 표현했다. 국어사전의 정의는 시적 감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사전상 매우는 초여름인 유월 상순부터 칠월 상순에 걸쳐 계속되는 장맛비다.
김 교수는 이맘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되도록이면 정원을 개방하고 있다. “주말이면 마당에 사람들이 한가득 들어차서 불편할 때가 많지만, 공유하고 내어주는 즐거움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손주까지 치면 조상이 물려준 땅에서 5대째 살고 있는데, (그 유산을) 나눌 수 있으니 기쁜 일이죠.” 매화가 매란국죽 사군자의 맨 앞자리를 차지한 이유가 계절의 순서만은 아닌 듯하다.
김 교수 집 매화가 봄날의 수채화처럼 화사하게 바라보이는 언덕을 주민들은 ‘매곡등’이라 부른다. 산등성이라 부르기엔 턱없이 낮은데, 아주 옛날에는 나무가 우거지고 음침했다고 한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 때는 토벌군이 주민 25명을 총살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현재 매곡등 일대는 순천 기독교의 성지로 변했다. 기독교 계열 학교인 매산 중·고등학교와 매산여자고등학교가 터를 잡았고, 산기슭에는 기독교역사박물관도 있다. 1900년대 초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들이 지은 여러 채의 건물은 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가장 눈길이 가는 건물은 1925년께 지은 조지와츠기념관이다. 조지와츠는 순천선교기지 건설을 위해 후원한 인물이다. 단단한 검은 벽돌 건물의 1층은 지금도 순천기독의원으로 사용된다. 현관에는 ‘순천기독진료소’라는 옛 현판이 달려 있다.
2층은 순천기독교선교역사박물관이다. 1970년 등대선교회를 창립하고 전국 각지로 돌며 선교활동을 펼치던 인휴(Hugh M. Linton) 목사를 기리는 박물관이다. 인 목사는 전라남도 선교의 선구자인 유진벨(Eugene Bell)의 외손자이고, 대전 한남대학교을 설립한 인돈(William A. Linton)의 셋째 아들이며, 인요한(John Linton)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 소장의 아버지다.
인요한은 대한민국에 1호 구급차를 보급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1984년 교통사고를 당한 부친이 구급차가 없어 이송 도중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을 당했다. 그는 남장로교에서 보내온 추모금으로 15인승 승합차를 구입해 구급차를 제작했다. 그 1호 구급차는 현재 매산여고 뒤 도로변 공원에 전시돼 있다. 매산중학교 앞에는 부친이 전국을 누빌 때 타던 랜드로버 차량이 전시돼 있다. 2012년 개관한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에 인(린튼)씨 가문의 3대에 걸친 한국과의 인연을 전시하고 있다.
매산등에는 조지와츠기념관 외에 순천의 근대문화유산으로 코잇 선교사 가옥, 프레스턴 선교사 가옥, 매산중학교 매산관 등이 있다. 그러나 모두 요양시설과 학교 안에 위치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들어갈 수는 없는 형편이다.
매산동은 전통 오일장인 웃장(5·10일), 아랫장(2·7일)과 가깝다. 웃장 국밥거리에는 평시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순천 국밥은 맑고 담백하면서도 구수하다. 2인 이상이면 8,000원짜리 국밥에 수육과 순대가 푸짐하게 제공된다.
순천을 매화의 고장이라 한다면, 그 상징성은 선암사 매화에 있다. 원통전 뒷마당에 수령 650년으로 추정되는 선암매를 비롯해 무우전 담장을 따라 오래된 매화나무 50여 그루가 심겨 있다. 담장을 타고 오르듯 구불구불한 원줄기에 수많은 잔가지를 뻗었지만, 용케도 꽃은 겹치지 않는다. 검은 가지 끝에 백매화 청매화가 화사하게 꽃망울을 터트리면 방문객의 가슴에도 봄 바람이 일렁인다.
선암매는 이제 막 봉우리가 부풀어 개화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 상주하는 해설사도 개화 시기를 정확히 말해 주지는 못한다고 했다. “어떤 해에는 오전까지도 꽃이 없었는데, 오후에 가니 몇 송이가 활짝 펴서 의도치 않게 거짓말을 한 경우도 있었어요.” 그래서 3월 20일께면 틀림없이 선암매를 볼 수 있을 거라고만 말한다.
선암사는 절간이 이렇게 호사스러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사시사철 꽃 향기가 넘치는 사찰이다. 명칭부터 신선의 놀이터다. 주차장에서 절간에 이르는 비포장길은 좌우로 나무가 빽빽한 숲길이다. 완만하게 휘어진 모양이 운치 있어 ‘가다가 돌아봐도 예쁜 길’이다.
일주문에 들어서기 전에는 무지개다리 승선교를 만난다. 바로 위에는 강선루 누각이 있다. 신선이 오르내리는 계곡이니 빼어난 풍광은 말할 것도 없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가는 등산로 초입에는 편백숲이 있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약 700m만 걸으면 된다. 선암매가 아니라도 더없이 좋은 휴식처다.
승선교 바로 아래에는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이 있다. 선암사가 겨울에도 푸르름을 유지하는 건 조경으로 심은 상록활엽수와 야생차 덕분이다. 사찰 초입이 온통 차밭이다. 시에서 운영하는 야생차체험관에서는 다례(3,000원)와 다식(5,000원) 체험과 숙박(5만 원부터)을 할 수 있다. 커피 대신 은은한 차 한 잔이 어울리는 곳이다.
선암사에서 멀지 않은 월등면 향매실마을은 전국 최대의 매화마을이라 자랑한다. 문유산(688m) 북동쪽 산기슭의 자연 부락인 이문·중촌·외동마을 일대가 전부 매화밭이다. 3월 중·하순께 하얀 매화꽃이 산골짜기 일대를 환하게 밝힐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