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확진자도 사무원에 투표지 전달… 이동약자 임시기표소도 문제 되나

입력
2022.03.0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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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장애인용 기표소도 투표함 이용 못해
공직선거법상 선거구별 한 개만 설치 가능
"확진자 사전투표 혼란상 재연될 수도" 우려 
선관위 "참정권 보장 조치… 법 위배 안 돼"

20대 대선 사전투표 과정에서 확진자·격리자의 투표함 접근 차단으로 선거법 위반 시비가 일면서, 비확진자 투표에서도 유사한 방식의 임시기표소가 다수 운영되는 현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선거당국은 고령자, 장애인, 임신부 등 거동이 불편한 유권자의 편의를 위한 조치로 법적 근거도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확진자 사전투표 혼란상에서 보듯이, 제3자를 거쳐야만 투표함에 투표지를 넣을 수 있는 방식은 언제든 비슷한 논란을 재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7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4, 5일 운영된 대선 사전투표소 상당수는 건물 1층 또는 투표소 외부에 이동약자를 위한 임시기표소를 따로 운영했다. 주로 투표소를 건물 2층 이상 상층부에 차렸지만 엘리베이터 등 계단 외 접근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경우다. 서울만 해도 25개 자치구 중 7곳(강북 광진 노원 도봉 은평 종로 중랑)을 무작위로 골라 조사했더니 5개 자치구가 최소 1곳, 최대 7곳의 투표소에서 이동약자용 임시기표소를 운영했다.

이들 기표소의 운영 방식은 5일 오후에 한해 설치됐던 확진자 임시기표소와 같았다. 투표소마다 투표함 1개만 사용하도록 한 공직선거법 조항에 따라 임시기표소엔 투표함이 설치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에선 기표된 투표용지를 임시 봉투(관내 유권자) 또는 회송용 봉투(관외 유권자)에 담아 선거사무원에게 전달하고, 사무원이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대신 넣는 방식으로 투표가 이뤄졌다.

앞서 확진자 투표용지가 쇼핑백, 쓰레기봉투 등에 담겨 허술하게 보관·운반되거나 심지어 투표함에 들어가지 않은 채 다른 유권자에게 다시 배부되는 일이 벌어진 터라, 임시기표소 이용자들의 불안감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다리 부상 때문에 5일 동대문구 사전투표소 내 임시기표소를 찾은 김모(57)씨는 "(투표함이 있는 줄 알고) 기표를 마치고 투표함을 한참 찾고 있는데 선거사무원이 오더니 내게 (투표지가 든) 봉투를 달라고 했다"며 "내 투표지가 투표함에 들어갔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 찜찜했는데, 확진자 투표 논란이 불거지는 걸 보고 이런 방식이 문제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인 논란거리는 법 위반 여부다. 공직선거법 157조 4항은 '선거인은 투표용지에 기표한 후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접어 투표참관인 앞에서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구대로라면 투표자가 직접 투표함에 투표지를 넣어야 하며, 사무원이 대신 투표함에 넣는 행위는 적법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렇다 보니 현행 이동약자 투표 방식을 개선해달라는 요구가 꾸준히 있어왔다. 일례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21대 총선 직후인 2020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인 참정권이 침해받고 있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특히 진정인 가운데 뇌병변 중증장애인은 "투표함이 2층에 있다 보니 사무원이 내 투표지를 봉투에 담아 가져갔다"며 "내 표를 직접 투표함에 넣을 수 없는 상황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선거당국은 공직선거법에 이동약자에게 투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는 만큼 임시기표소 운영에 법적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교통(이동)약자와 격리자의 투표소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시설 설치'(147조 11항) 규정과 이에 근거한 공직선거관리규칙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현행법은 일반 선거인은 직접 투표함에 투표지를 넣으라는 조항과 이동약자나 확진자의 참정권 보장 조항이 함께 있으며 두 조항이 서로 배치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표 내용이 보이지 않도록 운반용 봉투를 쓰고 있고, 선거사무원은 참관인 참여 하에 투표함에 투표지를 넣고 있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9일 본투표 때 확진자는 직접 투표함에 투표하도록 하면서도 이동약자에 대해선 기존 방식을 유지할 방침이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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