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동해안 지역의 대형 산불이 거의 매년 반복되고 있음에도, 야간 진화가 가능한 헬기 도입이 수년째 지연되는 등 효과적 방재를 위한 인프라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7일 강원도와 강원소방본부에 따르면 양 기관은 산불 초동 진화를 위해 2018년 4월부터 대형 헬기 도입을 추진했으나 아직 주문서조차 넣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본부가 효과적 화재 진압을 위해 필요로 하는 헬기는 담수량이 3,000ℓ인 대형 기종이다. 야간에도 띄울 수 있고 양간지풍(襄杆之風·봄철 영동지역에 부는 국지적 강풍)이 몰아치는 상황에도 가동할 수 있어, 대형 산불이 잦은 강원 지역에 꼭 필요한 장비다.
강원도는 수차례 이런 조건을 갖춘 대형 헬기 도입을 추진했으나 번번이 물먹고 있다. 고성군 속초시 강릉시 동해군 인제군이 산불로 초토화된 2019년 4월, 최문순 지사가 국회를 찾아 필요성을 호소했음에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헬기 도입이 지연된 주요 원인은 중앙정부가 국산 기종 사용 방침을 고수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강원도가 2020년 국비와 도비 등 270억 원을 들여 대형헬기 구입에 나섰으나, 정부가 국산 헬기인 수리온(담수용량 2,000ℓ) 활용 가능성을 따져볼 것을 요구하면서 사업이 멈춰섰다.
우여곡절 끝에 올해 1월 입찰공고를 냈으나 러시아의 헬기 제조업체와 법적 분쟁이 생기면서 발목이 잡혔고, 설상가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러시아제 기체 수입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소방본부는 조만간 2차 입찰공고를 낸 뒤, 입찰이 없으면 수의계약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지금은 미국 등 다른 나라 헬기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데, 지금 당장 계약서에 사인해도 제작기간을 고려하면 빨라도 2024년에야 배치 가능하다.
중앙정부의 퇴짜, 헬기 업체와의 분쟁 등 외부 변수 때문에 대형 헬기 도입이 지연된 사이, 강원도는 3년 만에 대규모 산불을 경험한 셈이다. 대형 기체 도입 실패가 두고두고 뼈아픈 대목이다.
장비를 갖추지 못한 것도 아쉽지만, 이미 운용 중인 헬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번 경북 울진군과 강원 지역의 산불에서도 100대 이상의 헬기가 동원됐지만, 진화 현장 곳곳에서 "헬기가 부족하다"는 원성이 끊이지 않는다.
실제 6일 산림청이 오전 일출과 동시에 삼척시와 울진군에 헬기 52대를 투입했다고 발표했으나, 오전 7시쯤 상황이 심각한 지역 중 하나인 삼척시 원덕읍에 나타난 헬기는 1대뿐이었다. 당시 산세가 험한 월천·노경리에 불이 번지던 시점이라 주민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같은 시각 산불로 산림 70㏊ 이상이 쑥대밭이 된 영월군 김삿갓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당국이 헬기 11개를 투입한다고 했으나, 6대가 현장에 늦게 도착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헬기 운용 시스템의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있다. 산불 현장 지휘는 지자체가, 헬기 배치는 산림청이 맡은 구조에서 혼란이 빚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산림청 관계자는 "강한 불길이 울진군과 동해시를 덮친 상황이라 동원할 수 있는 헬기 106대를 위험도에 따라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며 "헬기 투입은 상황실에서 종합적으로 모니터링해 결정하는 것이라 현장과 엇박자가 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화재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대형 산불을 막기 위한 시스템 정비를 주문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야간에도 헬기를 띄우고 원전 방어에 효과를 본 진화제 사용을 늘린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며 "산림 인접지역 건축 허가 시 주택과 야산의 이격거리를 의무화하고 스프링클러를 비롯한 진화시설을 갖추는 것도 생각해 볼 때"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