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이익은 기업을 키운 사회의 몫이다"

입력
2022.03.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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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유일한


1932년 경기상고를 졸업하고 유한양행에 입사한 기업인 홍병규(1916~2011)가 서울 신문로 사옥에서 숙직하던 어느 밤, 해주도립병원의 급한 연락을 받았다. 수입혈청약이 떨어져 수술환자가 위독하다는 거였다. 입사 2년차 신참 직원이었던 그는 숙직자 수칙을 무시하고 창고를 열어 약을 꺼낸 뒤 서울역으로 달려가 경의선 열차 차장에게 "열차가 병원 인근 토성역을 지날 때 약상자를 차창 밖으로 던져 달라"고 청했다. 차장은 부탁대로 약을 던졌고, 현장에서 기다리던 병원 직원이 그 약을 가져가 환자를 살렸다.

간밤의 일을 보고받은 회사 창업자 겸 사장 유일한(1895.1.15~1971.3.11)은 홍병규를 크게 칭찬했다.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경영철학에 따른 거였다. 자사가 개발한 강장제(네오톤토닉)에 마약 성분을 넣어 판매를 늘리자고 제안한 직원을 그 자리에서 무섭게 책망하며 당장 사표를 쓰게 한 일화도 유한양행 홈페이지는 소개하고 있다.

유일한은 평양에서 태어나 만 9세에 미국으로 유학 가 고학하다시피 하며 미시간대와 스탠퍼드대를 졸업하고, 현지에서 서재필 등을 도와 독립운동에 힘을 보탰다. 1926년 귀국해 유한양행을 설립, 1933년 진통소염제 안티푸라민을 출시했다. 1936년엔 한국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했고, 1962년에는 제약업계 최초로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1969년 은퇴하며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겼고, 손녀 학자금 1만 달러를 뺀 전 재산을 교육사업에 기부했다. 앞서 그는 유한공업고등학교와 유한공업전문대(현 유한대)를 설립했다. 현 유한양행의 최대주주도 그가 숨지기 직전 설립한 유한재단이다. 그는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며 단지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홍병규는 평생 유한양행에 재직하며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고, 1975년 계열사 유한코락스(현 유한크로락스) 대표이사 시절 '유한락스'를 개발해 출시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