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을 추억 쌓은 집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강릉 동해시를 덮친 산불로 정든 보금자리를 잃은 김영수(61)씨는 허겁지겁 챙겨 나온 부모님의 영정 사진을 가슴에 꼭 품고 있었다. 7일 임시 거주지인 망상수련원에서 만난 김씨는 인터뷰 내내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는 "지난 가을 담장도 다시 쌓고, 잔디도 다시 깔며 추억을 쌓았지만, 그만 화재로 집을 잃고 말았다"고 말했다.
집이 불에 탄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는 5일 오전 11시 30분쯤 긴급 문자메시지를 받은 뒤 부모님 영정사진만 겨우 들고 집을 빠져 나왔다. 강릉시 옥계면에서 시작된 불이 강풍으로 남하하며 동해시 곳곳을 덮치던 때였다. 대피 몇 시간 뒤 집은 지붕마저 폭삭 내려앉았다. 아직도 시뻘건 불꽃이 치솟던 장면이 떠올라, 김씨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나와 아이들의 기억, 아이들의 결혼 사진... 내 인생 모든 추억이 한순간에 사라진 느낌이에요. 열흘 뒤가 부모님 기일인데 집을 잃게 돼 마음이 착찹합니다. 몸이 떨리네요." 그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를 비롯한 동해시 지역 이재민 21가구 40여 명은 국가철도공단의 망상수련원 3층에 머물고 있다. 2019년 강원 산불 당시에도 동해시민들의 임시 대피소로 활용된 곳이다. 동해시는 이 수련원에 중앙관리실을 설치하고 집을 잃은 주민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하고 있다. 가구당 호실 하나를 배정하고 구세군을 비롯한 민간 단체들이 준비한 도시락·구호 키트 등을 제공 중이다.
다행히도 7일부터는 하루 두 차례 빨래도 할 수 있게 됐다. 이 곳은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등 필수 가전제품이 구비되어 있고 난방도 들어온다. 이재민들은 "힘든 시기지만 덕분에 큰 불편 없이 지내고 있다"며 지원에 고마움을 나타냈다.
당장 불편은 없어도 이곳은 내 집이 아니라 남의 집일 뿐. 언제까지 이 '임시' 시설에 머물 수는 없다. 이재민들은 "화마가 앗아간 삶의 터전을 재건할 수 있는 실질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정부가 경북 울진군과 강원 삼척시에 이어 동해시까지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해 달라"는 의견이 나왔다. 동해시 지역 사회단체는 "동해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달라"는 건의문을 청와대와 행정안전부에 7일 보냈다. 동해상공회의소는 "동해시를 제외한 정부의 특별재난지역 선별 선포는 피해 주민의 상처에 소금을 끼얹는 결과"라며 "삶의 터전이 화마 속에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이재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달라"고 호소했다.
"(특별재난지역 지정에 따른) 1,300만 원 수준의 복구비(2019년 산불 기준)로는 재기가 어렵다"는 걱정도 끊이지 않는다. 화재로 입은 실제 피해액을 감안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동해시 심곡동의 집이 불에 탄 전옥순(80)씨는 "빨리 보상을 받아 나가 살고 싶은데, 1,300만 원 정도로는 전세도 못 구할 것"이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2000년부터 산불 현장을 뛰어다니며 자원 봉사를 해 온 오원일(67) 전 강원도의원은 "보상금액이 너무 적어 새로 시작하기에 어림도 없는 수준"이라며 "실질 피해액의 3분의 2까지 지급하는 현실적인 방안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