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6·25전쟁 당시 첩보부대원으로 활동했다고 밝힌 90대 남성의 참전유공자 등록을 거부한 국가보훈처의 처분을 취소했다고 7일 밝혔다. 민원인의 참전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고 해도, 본인 진술에 신빙성이 높다면 입증 책임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권익위에 따르면 A(92)씨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북파 첩보부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지만, 이를 증명할 기록이 없어 참전유공자 등록을 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A씨는 미 정부가 2008년 기밀 해제한 문건 중 옛 소속 부대 관련 기록 10여 건이 포함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이 가운데 '저도 사건 보고서'는 1952년 8월 2일 CIA의 북파 공작원 훈련 장소였던 저도에 다가온 이승만 대통령의 낚싯배를 향해 경비병 2명이 11발의 경고 사격을 했던 사건이 기록돼 있는데, A씨는 두 경비병 중 한 명이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1952년 5월 첩보부대에 입대했다가 이 사건으로 징역형을 받고 1954년 5월에 재입대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A씨는 해당 보고서 등을 근거로 2019년 보훈처에 6·25 참전유공자 등록을 신청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군법회의 기록물 등을 분석한 결과 보고서에 등장하는 경비병을 A씨로 특정하기 어렵다며 참전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보훈처는 국방부 결정을 근거로 A씨의 등록 신청을 거부했다. A씨는 이에 불복해 2020년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행심위는 A씨의 참전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추가 기록물이 있는지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작곡가로 활동했던 A씨가 소속 부대 관련 기밀문서가 해제되기 이전인 1996년 음악잡지 인터뷰에서 "1·4후퇴 때 월남해 입대했고 첩보원이었으며 낙하산을 타야 하는 부대였다"고 말한 사실을 확인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기밀 해제 10여 년 전에 본인이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내용을 구술한 점을 감안해 A씨 주장의 신뢰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심위는 A씨가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실시한 예술인 구술채록사업에서 입대 경위와 오인 사격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점도 이번 결정의 근거로 삼았다.
민성심 권익위 행정심판국장은 "행심위의 증거조사권을 활용해 국민의 입증책임 부담을 덜고 실질적 도움을 준 적극행정 사례"라고 자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