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역사 지우는 러시아...파괴 위험에 문화재 숨기는 박물관

입력
2022.03.07 15:38
소장품 겹겹으로 포장해 지하실로 옮기고
저장고 앞 바리케이드 치고 약탈 대비하기도
유네스코 "러시아, 즉각 무력 사용 중단하라"

우크라이나 전역에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이 이어지며 문화재도 소실 위험에 처했다. 박물관과 미술관 직원들은 소장품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6일(현지시간) AP통신은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에 위치한 안드레이 셰프티츠키 국립 박물관 직원들이 러시아의 공습이 시작된 지난달 24일부터 운영을 중단하고 소장품들을 철제 상자에 담아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있다고 전했다. 1905년에 설립된 이 박물관은 우크라이나 최대 규모로 문화·역사와 관련한 문화재를 17만 점 넘게 소장하고 있다. 이호르 코잔 박물관 상무 이사는 비어 버린 박물관의 벽을 바라보며 "이곳에 들인 노력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며 "(공습이) 일어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는 믿을 수 없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우크라이나 전역의 다른 박물관과 미술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직원들은 작품이 러시아에 넘어갈 것을 염려해 미리 디지털로 전환해놓거나, 겹겹으로 포장해 은폐된 장소에 숨기고 있다. 안전한 외부 장소로 옮기고 싶어도 이동조차 위험해 지하실이 최선인 경우도 있다. 몇몇 박물관에선 약탈을 막기 위해 직원들이 예술품 보관소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밤낮으로 지키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은 전했다.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 국립 미술 박물관 직원 올렉산드라 코발추크는 "대부분의 박물관에선 직원들이 내부에서 생활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예술품을 보호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민간 지역과 군사 지역을 가리지 않는 러시아의 공격으로 문화재는 빠르게 파괴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이반키우 박물관이 공격을 받아 민속 화가 마리아 프리마첸코의 작품 수십 점이 파괴됐다. 불타는 박물관에 지역 주민이 뛰어들어 그림을 꺼내온 덕분에 그나마 10여 점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지난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당시 도네츠크 역사박물관은 한 달 동안 15차례 미사일 공격을 받아 소장품 4만5,000여 점을 잃은 바 있다.

수많은 문화재가 불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유네스코도 나섰다. 현재 우크라이나에는 성 소피아 대성당, 르비우 역사지구 등 7개의 세계문화유산이 있다. 유네스코는 지난 3일 성명을 내고 "국제 사회는 미래 세대를 위해 우크라이나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며 "러시아는 즉각 우크라이나에서의 무력 사용을 중단하라"고 규탄했다. 우크라이나의 문화정보부 장관 올렉산더 트카첸코는 유네스코에 러시아의 회원국 지위를 박탈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장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