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의 군사훈련으로 긴장 국면에 들어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처럼, 중국도 남중국해 점유를 위해 제2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벌이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7일 중국 해사국 홈페이지와 동남아 현지매체를 종합하면, 중국 하이난(海南) 해사국은 지난 4일 '항행안전 정보공표'를 통해 "4일부터 15일까지 남중국해 해역 5개 지점에서 군사훈련을 진행한다"며 "훈련 기간 해당 해역 내 선박 진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해사국이 언급한 5개 지점은 자국의 하이난성 싼야(三亞)와 베트남 중부 후에 사이의 해역에 분포하고 있다. 훈련 지역의 절반가량은 베트남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이다.
동남아의 영유권 분쟁 당사국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최근 자국의 EEZ 인근에 비상 경계 태세를 발동한 뒤 함선을 현장에 파견했다. 베트남도 분쟁의 최전선인 파라셀 군도(베트남명 호앙사 군도)를 중심으로 경계 근무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은 싼야가 중국 핵잠수함의 거점인 남해함대 기지가 위치한 점에 주목, 해상은 물론 바다 밑 움직임도 면밀히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중국이 지난달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 중 진행한 유사한 군사훈련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과는 정반대의 대처다.
동남아 국가들이 유독 긴장한 건 이번 훈련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창인 상황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사태 초기 "미국과 유럽이 개입된 이번 사태가 잘 해결되지 않을 경우, 중국이 남중국해에 유사한 방식으로 입지를 굳히는 시도를 할 수 있다"(길랑 캠바라 국제전략연구소 연구원)는 우려가 현실화될까 우려한다는 얘기다.
동남아의 근심은 깊어지지만,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무력 도발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존 블랙스랜드 호주국립대 전략국방연구센터 교수는 "서방이 중국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공범으로 받아들인다면 중국은 더 과감하게 전진할 수 있다"며 "이는 남중국해 문제를 안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에 큰 위기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의 한 소식통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질 경우 올해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이 경우 중국이 남중국해의 통제를 더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우크라이나 사태 반전 없이는 동남아도 힘의 논리에 또다른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남중국해는 매년 3조4,000억 달러(약 3,996조7,000억 원) 상당의 물동량이 지나는 국제 물류의 전략적 요충지다. 중국은 1974년과 1988년 파라셀 군도 등에서 베트남과 해전을 벌인 이후 남중국해에 U자 형태로 9개 선(구단선)을 그어 90%가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지적에도 ‘마이웨이’를 고수 중이다. 앞서 2016년 국제상설재판소(PCA)가 "중국의 주장은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으나, 중국은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은 지난 5일 제20차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올해 국방비 지출 규모를 전년 대비 7.1% 증액했다. 군비 확장을 해서라도 남중국해만큼은 수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