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 망명정부 수립을 극비리에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에 러시아의 공격 수위가 높아지자 장기전에 대비할 ‘플랜 B’에 돌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ㆍ유럽의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우크라이나의 우호국들이 러시아가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점령할 경우 게릴라 작전을 지휘할 수 있도록 망명정부 수립과 지원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예상 밖 선전을 펼치고 있지만, 러시아군이 주요도시 포위 등 장기간 침공작전으로 전환하면서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전역을 점령할 가능성이 높아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WP는 “미국과 유럽의 당국자들은 러시아의 군사적 승리를 전제하는 것을 꺼리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물밑에서 이 같은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들은 구체적으로 폴란드 등 우크라이나 주변 국가에 망명정부가 세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망명정부의 중심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우크라이나인을 결집시키는 구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군의 키이우 함락 가능성이 커지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서부의 르비우(리비프)로 이동해야 하는지 미국 당국자들과 논의해 왔다고 WP는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경호실도 대통령과 내각 관료들을 신속히 재배치할 계획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아직까지 키이우를 벗어나는 것을 거부하고는 있지만, 러시아군이 키이우에 밀어닥칠 경우 대비도 필요하다는 의미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도 젤렌스키 대통령의 탈출 계획을 마련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의 인도적 지원,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무기들의 재고 보충 등을 위한 예산으로 100억 달러(약 12조1,750억 원) 규모를 마련하고 의회에 요청한 것도 이 같은 움직임의 전초란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국 정부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에 비상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WP에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주요 군사ㆍ산업시설을 장악하고 타격을 입힌 러시아군은 키이우를 향한 공격에 대부분의 전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물론 서방도 태세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향후 전황이 장기 게릴라전 양상으로 흘러가더라도 러시아에 결코 유리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서방 정보기관의 한 고위관계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통제권을 확립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인은 지하 저항운동을 몇 달, 몇 년 동안이라도 계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인은 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을 위해 가장 치열하게 싸운 전사였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저항력을 심각하게 과소평가했다”고 WP에 말했다.